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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쯤되면 '덫'이라 불러야 할까?

'자식의 덫'..금융자산 소진 부동산만 남은 노년층

[취재파일] 이쯤되면 '덫'이라 불러야 할까?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노인빈곤에 대한 사회적 걱정이 커지고 있다. 연금 등 노후대비를 지금처럼 하던 시절이 아니었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었던 시기였던 만큼 가족들을 위해 대부분 소득이 소진됐다. 그런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은퇴 후 건강하게 한참을 더 살아야 하는데, 소득은 없고 예전처럼 자녀한테 기대기도 힘들어지면서 노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부동산 편중현상이 높은 것이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동산은 금융자산처럼 현금화하기 쉽지 않고, 대부분 깔고 앉아있는 경우가 많아서 현금화에도 제약이 따른다. 무엇보다 부동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에 불황까지 맞물리면서 부동산 매매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꼬박꼬박 모아서 내 집 한 채 마련한 노년층에게 기회비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가격으로 집을 내놓으라는 것도 억울한데, 신도시 중대형 아파트는 울며겨자먹기로 내놓는다 해도 거래조차 잘 되지 않고 있다. 가계 전체적으로도 실물자산 자산 편중이 높은데, 특히 노년층으로 갈수록 그 비중이 더 커진다. 왜냐하면 자녀교육비로 많은 돈을 지출하다가 혼인비용도 쓰고 하려면 현금화가 상대적으로 쉬운 금융자산을 먼저 처분해서 쓰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50대 중반 이후 가구주는 가계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 자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주 나이가 25세 미만이었을 때 전체자산 대비 실물자산 비중이 40%정도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꾸준히 늘어나 50대 중반이 되면 두 배 가량 높아진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은 80%에서 20%, 일본은 70~80%에서 60%로 떨어지는 것과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다.

                



연구원은 또 자산이 줄어드는 시기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데 주목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 자산이 70대 이후 감소세로 반전했는데, 우리나라는 퇴직전인 55~60세 무렵 자산 액수가 가장 높았다가 60~65세 구간부터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자녀들이 대학을 다녀서 등록금 부담이 많거나 자녀 결혼 비용으로 꽤 많은 돈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때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교육비나 결혼비용을 부모가 감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낳아주고 키워주고, 학교 보내주고, 결혼까지 시켜주니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참 고달프다.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뜨끔' 하다. 뼈빠지게 고생만 하셨는데, 자식들이 부모들의 노후자산까지 갉아먹었으니 죄송스럽기 그지 없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예전처럼 부모 부양의무를 무겁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자식들이 잘못이라기 보다는 경제 상황이 그렇다. 취업도 잘 안되고 소득이 줄어들다 보니까 부모 생각할 여력도 없고, 부모 입장에서도 잘 살기만 바랄 뿐이지, 자식들한테 손 벌리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게 된다.

가족간 연대의식도 예전보다는 희박해진 것이 사실이다. 최근 통계청 조사결과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12년 전엔 90%에 육박했던데 비해 2010년엔 36%로 그야말로 '뚝' 떨어졌다. 요새 노인들이야 이런 젊은이들의 가치관 변화, 사회상 변화를 목도하고 스스로 노후 준비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10년 전엔 30%에 불과했던 '스스로 노후준비를 하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해엔 66%로 많이 높아졌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 될 것이다.

문제는 이미 나이는 들었고, 소득은 없고, 노후준비는 별로 못한 세대들이다. 고령층의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문제를 야기하지만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별다른 벌이가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 값이 떨어지면 담보가치가 하락해 금전적 손실뿐 아니라 심리적 상실감과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버티다 버티다 대거 집을 매물로 내놓게 되면 집값 하락 압력은 더 커지는 악순환의 단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주택연금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자산 편중 현상이 심한 노령층이 '부동산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하는 상품'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평생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목표인 양 살았는데, 실제 쓸 수 있는 돈이 더 간절한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취재하다 만난 주택연금 가입자들은 한 달에 백만 원이라도 꼬박꼬박 돈이 들어온다는 건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가 유례없이 빠르다는 것, 다시 강조할 필요 없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노령층 빈곤은 젊은 계층 부담을 늘려 사회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개인에게만 노후대비를 맡길 수는 없다. 국민연금의 안정적 운용, 퇴직연금의 확대, 주택연금 활성화, 그리고 거기서 커버할 수 없는 더 상황이 열악한 계층엔 복지 영역이 개입해서 끌고 가주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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