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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차해도 '샘플 화장품' 샀던 이유

[취재파일] 구차해도 '샘플 화장품' 샀던 이유
2월 5일, 그러니까 정확히 지난 일요일부터 '샘플 화장품'을 알음알음 파는 행위가 금지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인터넷 등을 통해 샘플 화장품을 팔다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 벌금을 내야합니다. 법이 바뀌었으니 지키킨 지켜야 하는데, 그냥 지키기엔 찜찜한 게 한 두 구석이 아닙니다. 그래서 8시 뉴스에 기사를 썼었습니다만, 방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중립을 지켜야하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짧은 기사에 제 생각을 모두 담을 능력이 모자란 관계로 이렇게 취재파일을 통해 솔직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먼저, 샘플 화장품을 거래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일반적으로 샘플 화장품은 정품 화장품을 살 때 얻게 되죠. 대부분 잘 아시겠지만 뒷 이야기를 위해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화장품에는 소위 말해 '라인'이라는 게 있습니다. 얼굴을 환하게 해 준다는 화장품을 스킨-에센스-로션-영양크림까지 모아 놓으면 이게 '미백라인'이 되고, 눈가 주름을 펴준다든가 얼굴을 팽팽하게 해 준다는 것들을 스킨부터 영양크림까지 모아 놓으면 이건 '안티에이징(항노화) 라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재정의 압박도 있고, 또 화장품이 떨어지는 주기도 다르고 해서 화장품을 매번 살 때 마다 한 라인을 다 사긴 힘들기 때문에 한 두 개씩 따로 사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그럴 경우 화장품을 파는 사람이 "신제품이 나왔으니 이것도 한 번 써 보라며" 이것저것 라인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용기에 담긴 화장품을 챙겨주는데요. 이게 바로 '샘플'로 모두 무료입니다. 당연히 비매품이죠.

그런데, 몇년 전부터 일부 인터넷 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이 샘플들이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백화점 1층에 자리잡은 고가 화장품 브랜드의 제품 샘플들이 거래 대상이었습니다. 215ml에 백화점에서 18만 9천 원에 팔리는 에센스의 경우, 이런 사이트에서는 10ml에 5천 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21개 사면, 용량이 거의 같아지는데 돈은 11만 원 이니까 무척 싼 가격이죠. 게다가 여러 개 샘플을 사면 추가 할인도 되니까 실제로는 더 쌉니다. 작은 용기에만 담겨 있을 뿐, 같은 제품인데 돈이 10만 원 정도 절약되니 샘플이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슬슬 화장품 회사들을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시작됐습니다. 샘플의 경우 정품과는 달리 유통기한이 표시돼 있지 않습니다. 화장품도 엄연히 유통기한이 있는데 언제 생산됐는지를 모르다보니 오래된 샘플도 판매가 됐겠죠. 피부 트러블이 생긴 사람들이 소비자원 등에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정식 유통단계를 거친 제품이 아니니까 보상을 받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여기에 샘플의 인기를 안 일부 비양심 업체들이 가짜 샘플을 제조해 판매하면서 '못 믿을 샘플'이라는 인식도 확산됐습니다. 결국 화장품법 개정이 추진됐고, 그 법이 2월 5일부터 시행되게 됐습니다.

여기까지가 배경에 대한 설명인데, 이 쯤되면 저절로 생기는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샘플은 어떻게 시장에 나왔을까? 아직 아무도 샘플이 화장품 매장이 아닌 인터넷에 다량으로 유통된 배경에 대해서 속 시원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화장품 업체들에게 대놓고 물어봤는데도, 콕 집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화장품을 만들어서 유통하는 과정에서 새 나갔을 거라고 추측한다고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뭔가 화끈한 답을 들을 수 없어서 답답해 하던 차 한 샘플 판매 사이트 주인으로부터 운 좋게 비밀을 듣게 됐습니다. "업자가 있어요. 도매 업자들이 정품이랑 샘플을 받은 다음에, 정품을 파는 판매장에게는 정품을 넘겨주고 샘플 사이트에는 따로 샘플만 건네요. 그런 것들을 떼어다가 파는 겁니다. 가짜 상품은 아니에요." 오호라! 역시 정품을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할 샘플이 중간에서 몰래 빼돌려지고 있었던 겁니다.

                     


인터넷 등에서는 찬반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일단 샘플을 팔아서는 안된다는 사람들은 샘플이 비매품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은 판 것과 비슷하게, 무료인 것을 돈 받고 파는 건 심보가 글러먹었다는 겁니다. 정품을 사는 소비자들에게 새 제품을 시험 삼아 써 보라고 나눠주는 화장품을 판매하는 것은 제 돈 내고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반면, 샘플을 팔아도 관계 없다는 사람들은 부풀려진 화장품 가격에 집중했습니다. 지난해 8시 뉴스에서는 그토록 사람들이 알고 싶어했던 화장품 수입 원가를 속시원히 파헤친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화장품 회사 시슬리의 '수프리미아'의 경우 백화점에서 85만 원에 팔리지만 원가는 18만 원이 채 안됐고, 갈색병으로 불리는 에스티로더의 에센스는 수입 원가가 3만원 남짓이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샘플 판매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습니다. 화장품에 거품이 껴서 너무 비싼 현실 속에 좋은 화장품을 싸게 살 수 있는 대안이 샘플 판매라는 겁니다.

그러자, 샘플 판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된장녀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된장녀는 자신의 경제적인 수입을 넘어서는 명품 가방을 선호하고, 손에는 밥 한 끼 값에 달하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드는 등 사치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것을 수입 화장품 샘플 사는 행위에 적용한겁니다. 쉽게 말해 돈이 없으면 현실에 맞춰서 값싼 화장품을 쓰면 되는 것인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싼 화장품을 고집하는 건 허영심의 발로라는 거죠. 

맞는 말입니다. 샘플 한 두개를 중고상품 거래차원에서 사고 파는 정도는 애교가 될 수 있어도 중간에 업자들이 개입되고 부정한 방법으로 유통해서 파는 건 옳지 못한 행위가 맞으니까요.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어떤 글이 눈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저도 구차한거 알고 있습니다. 다 정품 쓰고 싶지, 누가 뚜껑도 없는 샘플을 새나올까 쩔쩔 매가며 쓰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좋은 화장품을 값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뿐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제 샘플은 거래할 수 없습니다. 판매목적으로 진열만 해도 안됩니다. 화장품 회사들은 기분이 좋을 겁니다. 정품 판매를 늘릴 기회라며 미소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 능력대로 돈이 부족한 사람은 싼 화장품을 쓸테고, 여유로운 사람들은 정품을 구입하고 샘플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모두 좋아진 건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화장품 회사의 몫이 남았습니다. 화장품 회사들은 수입원가와 크게 차이나는 가격에 대해 이런 이유를 댑니다. 마케팅 비용, 광고비, 판매사원의 인건비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 두배 정도야 가격이 불어날 수 있어도 다섯배 여섯배는 누가 봐도 심합니다.

저는 값싼 화장품도 써 보고, 값 비싼 화장품도 써 봤습니다. 일반적인 이야기가 될 수는 없겠지만, 또 심리적인 효과도 크겠습니다만 가격이 나가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흔히 말하는 '효과'가 조금 더 좋긴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백만원 가까운 돈을 들일 만큼 눈에 띄게 효과가 좋은 건 또 아닙니다. 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제품을 갖고 싶어하고, 또 어떻게든 싸게 사려고 했던 마음까지 비난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2월이 되면서 수입화장품 가격이 또 올랐습니다. 아직 안 오른 브랜드는 조만간 인상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백화점의 노른자층에 화려하게 자리잡은 그 브랜드들이 이번 샘플 판매 금지 조치로 얻게 되는 이익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소비자들과 나누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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