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분 30초 안에 다 털린다

새벽 1시쯤, 경기도 화성의 한 보석가게 주인은 부랴부랴 가게로 뛰어갔습니다. 보안업체로부터 도둑이 들었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도착해 보니 가게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돼 있었습니다. 유리 진열장은 죄다 깨져있고, 보석은 아무것도 없고, 무엇보다 가게 뒤편 유리가 아예 박살이 나 있었습니다. 설 연휴를 앞둔 새벽에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습니다. 범행 장면이 담긴 CCTV를 봤을 때는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절도범은 2명이었습니다. 한시간 가까이 가게 밖에서 서성이더니 갑자기 가게 뒤쪽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유리로 된 보석 진열장을 망설임 없이 망치로 깨부쉈습니다. 진열장 3곳에 있던 보석은 각자 가져온 상자에 쓸어 담았고, 서랍까지 열어 가져갈만 한건 다 챙겨서 황급히 뒤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가게에 들어와 나가기까지 1분 43초, 그 짧은 시간에 모든걸 훔쳐 달아났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CCTV를 여러번 반복해서 봤습니다. 가게는 1층이었고,  밖엔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습니다. 이들이 들어온 뒷문은 유리로 돼 있었고, 이들은 역시 망치로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뒷문은 상가 통로에 연결돼 있는데, 강화 유리로 돼 있는 뒷문을 깨부수기까지 꽤 큰 소리가 났을 것이고 주변에 있는 편의점에서도 이 소리가 들렸을 겁니다. 유리를 깨는 순간 가게 안에 설치된 보안 장치가 울렸을 것이고, CCTV에 촬영되는 것도 몰랐을 리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 모든걸 다 무시하고 가게 내부에 침입해 1분 43초만에 모든걸 훔쳐 달아났습니다.

보안 업체 직원들이 부랴부랴 달려 왔지만 모든 상황은 이미 끝난 뒤였습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온다 할지라도 범인들이 현장을 떠나기 전에 도착하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이들은 모자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로 얼굴까지 가려 CCTV로도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이들의 대담한 범행 그 자체였습니다. CCTV에 찍히든 말든, 보안 경보가 울리든 말든 보안 업체 직원들이 출동하기까지의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 빠른 시간에 치고 빠지는 범행 수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최근 이렇게 보안 장비를 무력화 시키는 절도가 유행인가 봅니다. 지난달 중순에는 경기도 안산의 한 휴대 전화 매장이 싹쓸이 당했는데, 절도범 2명이 휴대전화를 모두 훔쳐 달아나는데 불과 1분 30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게 입구 유리문을 두 세차례 세차게 흔들어 열고 들어간 뒤, 가져온 상자와 가방에 휴대전화를 모조리 쓸어 담고는 잽싸게 튀는 겁니다. 보안 업체 직원들이 5분도 안돼 현장에 도착했지만 상황은 모두 끝난 뒤였고, 경찰도 CCTV에 담긴 범행 장면에 그저 허탈할 따름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서울 강남에서도 커피숍만을 대상으로 작은 손금고를 털어 달아나는 절도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역시 커피숍 유리문을 세차게 흔들어 열고 계산대에 있는 손금고를 아예 통째로 들고 나온 뒤 준비시켜 놓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기까지 불과 15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남 일대에서 이런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아직 용의자는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속전속결식의 대담한 범죄에 딱히 대책이 없다는 겁니다. 대부분 범행을 예방하기 위해서 보안 장비들을 설치하는 것이지만, 정작 이런 경우에는 그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철저하게 가리고 대범하게 범행하기 때문에 경찰이 인상착의를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실제 화성 보석가게 절도 사건도 범행 9일만에 범인들이 잡혔는데, CCTV에 찍힌 대강의 윤곽과 범행 수법 등으로 탐문 수사를 벌인 끝에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보안 장비를 너무 과신하는 것보다 가게 출입구에 철제 셔터를 설치하는 등의 실질적인 방법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런 전문가 수준의 절도범들을 모두 따돌릴 순 없겠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수법으로 당하는 일을 겪지 않으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것도 방법일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