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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은퇴 준비, '노후자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취재파일] 은퇴 준비, '노후자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끔 취재를 하다가 보면 어떤 주제를 다루면서 "아! 이건 나부터 먼저 실천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번 한국의 베이비부머의 은퇴 준비에 관한 취재가 그랬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베이비부머에 관해 4천여 명의 대규모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를 취재할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지만 올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통합은퇴지수라는 것을 다루면서는 '나의 노후' 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 1955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분들입니다. 우리 인구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760만 베이비부머들이 매년 50만 명씩 본격적으로 은퇴를 하기 시작하면서 은티 준비에 관한 분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체계적인 은퇴 이후 삶에 관한 연구가 부족했습니다. 은퇴 이후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하는 재테크 차원의 접근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돈 못지않게 노후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이런 것들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넘쳐난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 것인가?', '하루 아침에 달라진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남은 여생을 지낼 것인가?' 라는 부분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과연 얼마나 준비가 돼 있을까요?

서울대 노화고령연구소와 메트라이프 코리아 재단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베이비부머 3천7백 명을 대상으로 돈뿐 아니라 건강, 심리, 사회적 관계 등을 계량화 한 통합은퇴준비 실태를 조사해 은퇴 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낙제점에 가까운 62점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노후자금(재무영역) 준비 지수는 100점 만점에 52.6으로 낙제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은퇴 뒤 사회적 위치가 달라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는지를 나타내는 심리 영역은 겨우 낙제를 면한 수준이었습니다.
             


             

가족, 친구,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사회적 관여는 평균 점수가 전체 평균보다는 다소 높았지만 현재의 사회적 관여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를 측정한 지수만 보면 겨우 60점에 턱걸이했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은 가족이나 친구, 지역사회와 공존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미래에 좋아질 가능성을 고려해 전체 지수가 평균보다 높았지만, 방법을 모르면 소용이 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 중에 만난 베이비부머 그룹들은 "여자들은 이웃, 지역사회와 잘 지내고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 같은데 남자들은 직장 관련 네트워크를 제외하고는 관계를 맺고 지내는 방식이 서투르다.", "은퇴 뒤 가장 두려운 것은 부인이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이다. 부인이 없다면 고립될 것 같다." 는 등 두려운 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관계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돈은 있는데 사회적으로 고립된 은퇴 생활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일 중심으로 생활을 해 왔고, 자녀 뒷바라지와 부모 봉양에 우선 순위를 둔 채 생활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노후를 위한 준비는 부족한 편입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그나마 제대로 통합적인 은퇴준비를 하고 있는 분들은 14.7%에 불과했습니다. 100명 가운데 15명도 안 되는 분들만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은 셈입니다. 나머지는 걱정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베이비부머들은 평균적으로 62세에 은퇴를 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는데, 이는 기업 평균 정년인 55세보다 7년이나 더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머리 속으로 기대하는 은퇴 연령이 늦다보니까 은퇴를 위한 준비도 미루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더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를 위해 바쁘게 생활하고 있으니까 은퇴 준비는 뒷전에 미루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은퇴 이후 사회적 관계를 위한 준비는 이르면 은퇴 전 10년, 늦어도 4~5년 전부터는 시작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진국 베이비부머들은 자원봉사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직업 외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고립 우려가 적은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족과의 관계, 건강, 사회적 생활 같은 무형의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배분할지에 관한 방법을 미리 계획하는 이른바 행복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은퇴 전문가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들었던 울림 있는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다 해결될 것이란 막연한 생각으로는 은퇴 뒤 긴 삶을 행복하게 보내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준비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

여러분에게도 그 울림이 다가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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