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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면허시험장에서 기막힌 일이…

시험은 시험답게!

[취재파일] 면허시험장에서 기막힌 일이…

2003년 초였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봤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지막 관문인 도로주행만 두 번인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운전을 아예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떨렸습니다. 시험관이 무서웠습니다. 가차 없는 채점 때문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손에 쥔 면허증이 그리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운전 경력 9년째. 접촉 사고 한 번 밖에 나지 않은 비교적 양호한 운전자라고 자평합니다.

- 면허시험장에서 시험관이 막 가르쳐주더라
= 학원이 아니고 시험장에서? 국가공인 시험장에서?
- 어~! 말이 되나 그게?
= 안 되지. 어디서?
- 다 그렇대
= 왜?
- 그건 나야 모르지!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왜 가르쳐줄까? 어떤 식으로 가르쳐줄까? 가르쳐주는 수위는 어떨까? 가르쳐줘서 과연 무슨 이득을 볼까? 설마 뒷거래가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현장이었습니다. 가르쳐주는 현장을 포착해야 했습니다. (취재 취지에 기꺼이 응해주셔서 그 현장을 담아와 주신 분들께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녹화된 영상물을 쭉 돌려봤습니다. 가관이었습니다.

주행 방향과 기기 조작을 가르쳐주는 건 예사였습니다. 당일 합격 목표치로 몇 명만 합격시키면 된다는 말도 들어 있더군요. 시험관들의 '족집게 코치'는 도로주행의 꽃, 평행주차에서 주로 이뤄졌습니다. 주차하는 방법을 정말 세세하게 집어줍니다. 영상물을 보는 내내 '이게 진짜 시험이 맞나, 학원에서 하는 연수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답을 듣고 운전한 수험생들, 대부분 합격했습니다. 축하드릴 일이긴 하지만 걱정도 되더군요. 그래서 운전을 한 번 시켜봤습니다. 완전 초보 운전자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런 상태로 도로로 나갈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앞섰습니다.

                   



이에 대해 전국 26개 면허시험장을 관리하는 도로교통공단은 '면허시험장에서 시험관이 가르쳐주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 가르쳐주는 건 원칙적으로 잘못된 일이다'라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반박도 했습니다. "이미 불합격 한 사람일 경우 다음 번 시험을 위해 가르쳐 줄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황당했습니다. 시험관이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들은 대부분 합격했거든요. 도로주행 중 불합격하면 시험관이 바로 운전 중단시키고 자신이 직접 몰고 다시 시험장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사흘 동안 면허시험장을 전전하면서 지켜본 뒤 터득한 내용입니다.

자, 그렇다면 시험관들은 왜 이렇게 운전 방법을 수험생에게 가르쳐줄까요? 관전 포인트는 운전면허발급 건수가 교통공단의 실적으로 잡혀 있다는 점입니다. 실적을 내야 기관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실적 만큼 예산도 따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가가 좋아야 성과급 등 각종 인센티브까지 주어지는 구조이지요. 공단 이사장이 정기적으로 면허 발급 건수를 보고받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교통공단이 실적으로 높이기 위해 '합격률을 높이라'고 조직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모든 시험관이 수험생에게 정답을 가르쳐주며 시험을 보게 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무작위로 촬영된 영상 속에서 시험관들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정답을 가르쳐주는 모습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건 적어도 운전면허시험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가 얼마나 헐거운지 짐작케 합니다.

무뚝뚝하고, 온정 없고, 절차대로만 하는 공무원, 공사 직원들 민원인들이 꺼려하는 '1순위'죠. 그러나 면허시험장에서만큼은 시험관들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은 민원인이 꺼리고 불평하더라도 말이죠. 시험은 시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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