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오리발'과 돈봉투, 쉽지 않은 검찰 수사

[취재파일] '오리발'과 돈봉투, 쉽지 않은 검찰 수사

"그 자리가 오리발 돌리는 자리다." 각 정당에 있는 이른바 '당조국장'이라는 당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무조정국장이라는 '풀 네임'보다 당조국장이라는 축약어로 더 유명한 이 자리는 특히 선거철이 되면 '오리발'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고 한다.

돈 봉투는 물론이고 돈 가방까지 있던 시절, 통치자금이라는 용어로 정치권에 뭉칫돈이 흔하던 아주 '먼 옛날' 얘기라고 한다. 당연히 지금처럼 정치자금법의 잣대가 엄하던 시절도 아니다.

눈치 챘겠지만 여기서 '오리발'은 돈다발을 뜻하는 정치권 은어다. 흔하게 사용되다 보니 사실상 은어도 아니지만 전달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르쇠'로 일관해서 오리발이라는 설도 있고, 돈다발 모양 자체가 오리발 같아서 오리발이라는 얘기도 있다.

과거 선거철이 되면 당조국장은 당에 조성된 '오리발' 뭉치들을 각 지역 당협이나 지구당에 전달해 선거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전국 단위로 자금을 집행하는 막강한 자리였다.

오리발의 특징은 현금이니 당연히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거다. 기본 전제는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침묵으로 맺어진 신뢰다. 이런 기본적인 조건만 충족된다면 수사 기관의 칼날을 피해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사 기관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지만 말이다.

최근 정치권 흔들고 있는 돈 봉투 사건에서 이 돈 봉투 역시 본질은 '오리발'이다. 당조국장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구조는 똑같다. 주고받는 사람이 모두 입을 닫았으면 조용했을 이 사건이 터진 건, 받은 쪽들이 입을 열면서다. 기본적인 비밀의 규칙이 깨졌으니 돈 봉투 옆구리 터지듯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돈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고승덕 의원, 안병용 당협 위원장에게서 돈을 돌리라는 지시와 함께 2천만 원을 받았다는 구의원들. 모두 돈을 받은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물론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이 없다. 기본적으로 흔적을 찾기 힘든 현금이니 수사는 당시 정황, 특히 관계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받은 사람은 있다고 하니, 준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압박해 진술과 정황을 맞추는 방법이다.

물론 계좌 추적도 하고, 통신 수사에 이메일 압수수색까지 하지만 기본적인 수사의 틀은 사람의 '입'을 보고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검찰의 어려움이 있다. 누가 봐도 의심이 가는 사람과 상황. 여기에 명확한 근거를 들이대야 하는 검찰의 입장에서 볼 때 돈 봉투, 아니 오리발 수사는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최근 곽노현 판결에서 보듯 법원에서는 진술과 정황 근거, 특히 한쪽의 진술과 정황 근거를 통한 간접 증거 보다는 명확한 직접적 증거를 원하는 추세다. 검찰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검찰은 고위 관계자는 전당대회 당시 실무진부터 차근차근 한 계단 한 계단 위로 올라가며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장한 각오'라는 말과 함께. 굳이 검찰의 이런 심정을 이해하지 않아도 쉽지 않은 수사라는 것과 최종 사법처리 대상과 수위가 높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오리발의 흔적을 극적으로 찾아내는 반전의 묘미를 기대해 본다. 기자로서 써야 할 기사 숫자와 내용이 많아지고 퇴근 시간이 늦어져도 감내할 수 있는 그런 반전 말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