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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로존 위기, 독일의 위상은?

[취재파일] 유로존 위기, 독일의 위상은?
지난 해 프랑스에서는 유로존 위기 해결을 주도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합성어를 놓고 논란 아닌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메르켈+사르코지=메르코지(Merkosy)라는 용어가 일부 언론에서 등장하자, 또 다른 언론에서는 사르켈(Sarkel=사르코지+메르켈)이라며 일종의 국가적 자존심을 내세운 것이죠.

그런데 이름을 짓는 입장에서 이 두 가지가 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습니다. 독일이야 아무래도 경제 규모가 더 크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메르켈 총리를 먼저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유로존 위기 대응 방안들을 주도했기 때문에 사르코지 대통령을 앞세우는 것이 맞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달 중순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통상 신용등급 트리플A 국가라고 할 때의 기준은, 무디스, S&P, 피치 등 3대 국제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트리플A 등급을 받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무디스와 피치의 등급은 여전히 트리플A지만, S&P의 등급이 강등되면서 트리플A 국가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1975년 트리플A 국가가 된 이후 36년 만의 일입니다.

4월 대선을 앞둔 사르코지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일 수 밖에 없지만,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이 깎이면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지지율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로존 위기 해결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는 프랑스 위기 해결에도 허덕이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부가가치세 인상과 금융거래세 신설 등을 발표하긴 했지만, 프랑스가 앞서 나가면서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일단 프랑스 먼저 살리고 보자는 차원으로 바뀐 것입니다.

당초에는 1월 9일 베를린에서 독-불 정상회담을 한 뒤, 20일 로마에서 독-불-이 3국 정상회담을 갖고, 30일 브뤼셀에서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유로존 위기해결의 주도자 역할을 부각시킨다는 로드맵이 그려져 있었는데, 중간에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20일 3국 정상회담은 취소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메르코지냐 사르켈이냐는 논쟁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고, 독일이 유로존의 지도국가로 등극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독일의 이런 지위는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경제 규모나 경제의 안정성 측면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경쟁력은 이미 한참 벌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서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을 비교할 때도 독일의 금리가 기준입니다. 25일부터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 경제포럼에서도 개막연설을 한 메르켈 총리에게 모든 관심이 모아졌고, 30일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 역시 독일 정부의 입장이 가장 중요한 잣대였습니다.

문제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입니다. 지금의 유로존은 1,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고 나서 유럽대륙에 다시는 전쟁이 발생해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독일의 재무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안으로 석탄과 철강의 생산을 감시하기 위해 1950년 출범한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그 모체입니다. 독일을 감시하기 위해 시작된 유럽의 통합인데, 결국 다른 유럽 국가들이 독일의 감시를 받게 된 셈입니다.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도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재정 주권을 유럽연합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독일 일부에서 나오면서 유럽 사람들에게는 ‘나치’의 트라우마가 다시 꿈틀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만약 지난 97년 IMF 당시, 일본이 우리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해줄테니 재정 주권을 내놓으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비슷한 상황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독일의 책임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예를 들더라도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가 심해지는 동안, 그 적자분은 고스란히 독일의 흑자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독일 국민들의 세금으로 게으른 일부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다’는 주장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100% 수용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1950년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출범할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목표는 독일의 재무장을 봉쇄하는 것이었지만, 독일 역시 전쟁 도발의 과오를 딛고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겠다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굳이 책임론이 아니더라도, 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공존공영의 기틀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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