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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출석'과 '소환'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이유

[취재파일] '출석'과 '소환'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이유
정든 사건팀을 떠나 검찰 출입을 시작한 지 이제 한달쯤 됐습니다. 한 달 사이에 뭔 일이 그렇게 많은지.... 달달달 떨며 검찰에 출석한 사람들 나오길 기다리다 새벽녘에 집에 가는 일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검찰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익혀가는 요즘. 몇 가지 헷갈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검찰에 나온 사람들을 묘사하는 '용어'입니다. 법조 기사를 쓰다보니 결국 제일 많이 쓰는 것이 '누가 검찰에 왔다' 혹은 '누구를 검찰이 불렀다'는 내용이더군요. 그런데 이 용어가 참 애매합니다.

누군가 검찰에 왔다. 이 말을 정확히 쓰자면 '검찰에 출석했다.'가 됩니다. 누군가를 검찰이 불렀다. 이 말을 기사체로 번역하면 '검찰이 000을 소환했다.'가 됩니다.

출석과 소환.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두 현상을 서술하는 단어입니다. '소환'은 검찰이 누군가를 말 그대로 부르는 과정입니다. 검찰이 누군가를 부르는 것은 검찰의 권한이자 자유이죠. 그러나 검찰이 '소환'하더라도 곧바로 조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소환'에 대해 나가겠다고 응하고 검찰청에 모습을 드러내야 조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소환 이후에는 '출석'이 필요한 거죠.

그렇지만 기사에서는 '소환'이나 '출석'이 그렇게 분명하게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소환' 자체가 '출석 조사'와 동의어처럼 쓰이는 것이지요. 가장 많이 쓰이는 기사 문장들 을 살펴봤습니다.

1) 검찰이 000 회장을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 검찰이 누군가를 불러서 조사했다는 뜻이므로, 문장에 오류는 없습니다.

2) 검찰이 000 회장을 오늘 소환했습니다
: 만약 '누군가 오늘 검찰청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면 틀린 문장입니다. 
'소환해 오늘 조사했다.' 라거나 '000회장이 오늘 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라고 써야합니다.

3) 검찰이 모레까지 중앙지검으로 출석하라고 오늘 소환 통보했습니다
: 통보'라는 말은 쓸 필요가 없습니다. '소환'이라는 말 자체가 명령 내지 통보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소환'이란 말이 2)의 예에서 보듯, 오해되고 있는 측면이 있어,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굳이 '통보'라는 단어를 붙이는 듯 싶습니다.

[소환:법원이 피고인, 증인, 변호인, 대리인 따위의 소송 관계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하여, 공판 기일이나 그 밖의 일정한 일시에 법원 또는 법원이 지정한 장소에 나올 것을 명령하는 일. -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그렇다면 이 같이 단어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를 따져보기 전에,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분석해보겠습니다. 소환 조사(출석 조사) 후 피의자 또는 참고인이 돌아가는 과정에 대한 서술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발견됩니다. 김두식 한동대 교수가 저서 『헌법의 풍경』에서 분석한 내용을 인용하겠습니다.

1) "KOC 위원 선정과 관련해 1억여 원을 받고 대한체육회의 공금 일부를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당 김운용 의원이 오늘 검찰에 자진 출석해 혐의를 일부 인정하는 내용의 자술서를 제출했습니다. 검찰은 다음 주 월요일 다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며 돌려보냈습니다. (2003년 12월 26일 모 지상파 뉴스)

2) "이회창 전 총재가 불법 대선자금 모금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오늘 검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중략) 이 전 총재는 9시간이 넘은 검찰 조사 끝에 조금 전 피곤한 모습으로 귀가했습니다"(2003년 12월 15일 모 지상파 뉴스)

3)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씨가 지난 대선 당시 10억 원을 불법 모금했고, 또 선봉술 전 장수천 대표에게 3억 원을 전달했다고 검찰이 확인했습니다. 검찰은 안씨를 오늘도 귀가시키지 않고 조사한 뒤 내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입니다. (2003년 12월 13일 모 지상파 뉴스)

4) "SK그룹이 조성한 비자금 100억여 원이 정치권에 유입된 혐의가 확인된 가운데 지난 정부의 국정원장에게도 거액이 건네졌다는 의혹이 제기됨으로써 향후 수사과정에서 큰 파장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중략) 송광수 검찰총장은 귀가 조치된 손길승 SK 회장의 사법 처리 문제에 대해서 원칙대로 처리할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2003년 10월 6일 모 지상파 뉴스)

- 김두식 지음, 『헌법의 풍경』에서 재인용 -

김 교수는 이 중에 '귀가'와 관련해 가장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2)번이라고 지적합니다. 검찰의 '소환'(혹은 '출석 요구')에 따른 수사는 강제성을 띠지 않는 수사('임의수사')이므로 검찰이 '돌려보냈다'거나 귀가'조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귀가했다는 것이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돌려보낸다'거나 귀가 '조치'란 표현이 더 많이 쓰일까요?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 머리 속에 '검찰청의 주인은 어디까지 검사이며, 검찰에 소환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검사들이 그 신병을 처리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돌려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마음대로 돌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이회창 전 총재의 경우 예외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쓴 것은 높은 사람에 대한 '예우'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라고 김교수는 분석했습니다. 저는 '소환'이란 단어가 오용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이나 법원의 권위는 물론 필요합니다. 범죄자를 처벌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적절한 권위는 필수불가결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순간에, 불필요하고 법적으로 보장되지도 않은 권리를 머리 속에 가정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이제 막 검찰청을 출입하기 시작한 기자로서, 단어 하나를 쓸 때도 신중함과 공정함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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