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23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2005)로 2000년대 중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준익 감독.
한국 상업영화 진영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던 이 감독이 지난해 초 개봉한 '평양성'의 흥행실패 후 돌연 상업영화 은퇴를 선언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들끓었고, 이 감독은 잠적했다. 그의 퇴장을 놓고 벌어졌던 논란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밀물 빠지듯 사라져갔다.
이준익 감독을 지난 19일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만났다. 새로운 영화를 들고 온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제2회 올레(olleh) 스마트폰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자격으로서다.
-- 스마트폰영화제는 왜 필요한가.
▲일반적인 영화제는 복잡한 기자재로 찍은 영화들을 대상으로 한다. 단편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들도 HD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영화다. 고가장비다. 반면 우리 영화제는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들을 대상으로 한다. 영화와 관련된 전문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1-2개의 애플리케이션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영화들이다.
-- 그래도 영화의 질적인 부분은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
▲입장료를 내고 보는 상업영화보다 화질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영화 관람하는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조명이나 녹음 등 부속장비를 잘 활용하면 필름이나 HD 영화에 근접하게 찍을 수도 있다. 꼭 돈을 많이 들여야 좋은 영화는 아니다.
-- 작년 상업영화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평양성'의 손익분기점인 250만 관객에 미치지 않으면서다. 심경의 변화는 없는가.
▲당시에는 영화에 대한 열망이 지나치게 컸던 것 같다. 그간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오면서 과감한 시도도 많이 했다. 그런데 찍으면 찍을수록 영화가 무서워졌다. 지금보다 영화를 덜 알았을 땐 내가 가진 생각을 주장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내가 가진 주장을 대중에게 불어넣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깨달았다. 진심으로 대중과 맞닿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는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 거다.
-- 상업영화 은퇴발언에 대해 후회하나.
▲은퇴 여부는 말실수였다. 말하면 반은 실수다.(웃음) 그런데 그게 내게는 약이 된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는 건 일상에서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축복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간혹 매를 맞아야 한다.(웃음)
-- 은퇴까지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자만심 때문이었다. 당연히 중견 영화감독으로서 한국영화 산업에 대한 중압감은 있었다. 기대감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지만, 부응하지 못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공자님 말씀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고 했다. 왜 내 마음을 사람들이 몰라주는지 답답했다. (글을 올린 건) 욱하는 심정이었다. 졸렬했다.
-- 대기업 중심의 배급시스템에도 실망감을 느꼈나.
▲유통구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품질이 중요하다. 영화가 좋으면 배급의 불리함조차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결국에는 영화의 문제다.
1993년 B급 정서가 가득한 독립영화 '키드캅'으로 영화에 입문한 이 감독은 '황산벌'(2003)을 찍으면서 연출가로서 주목을 받았다. 사투리를 주재료로 쓴 이 영화가 배우들의 호연과 밀도감 있는 연출에 힘입어 비평과 흥행에 동시에 성공하면서다. 황산벌의 후속작인 '평양성'(2011)이 나왔을 때, 그는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을 그린 후 후속작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 '황산벌 3부작' 프로젝트는 사실상 물 건너간 건가.
▲지금은 그저 손 놓고 가만히 있는 상태다. 전에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렇게 살았다. 지금은 바뀌었다. '뭐든지 하지 말자'다. 나 말고도 할 사람은 많다. 꼭 나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 그래도 당신은 오랫동안 연출을 해온 감독이다.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다닐 테고, 무언가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치솟을 듯하다.
▲물론 그런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배우가 달성하려는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간 적잖이 해왔는데, 무언가 다시 만들어내는 것도 어쩌면 공해(公害) 일 수 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최대한 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맑은 정신으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 만약 복귀한다면 상업영화가 될까.
▲상업이든 비상업이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저예산 영화에도 얼마든지 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감독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이 오롯이 담긴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대박'을 터뜨린 '왕의 남자'에서는 계급사회에 대한 힐난은 물론 사극으로는 이례적으로 동성애를 다뤘다. 퇴락한 가수의 짧은 도약을 그린 '라디오 스타'나 잊고 지냈던 꿈을 회복하려는 40대 남성들의 뒤늦은 꿈 찾기를 그린 '즐거운 인생'(2007)에도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담겨 있다.
-- 그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다룬 영화를 많이 찍었다.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성공의 욕망으로부터 좀 더 멀어진 다수 이야기를 찍었다.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이 그런 영화들이다. 그런 소외된 사람의 가치를 알아주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주제들이 영화로서 공론화되면 좋은 것 아닌가.
-- 영화제 외에는 요즘 무슨 일을 하는가.
▲여수 엑스포에서 선보일 미디어 아트를 편집하고 있다. 뮤직비디오식 미디어 아트다. 아주 재밌는 작업이다. 그간 영화를 통해 내가 몸담은 공동체의 현재성과 과거의 역사성에 집착했다. 앞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영화의 미적인 부분 자체에 집중하는 작품도 찍어보고 싶다.
-- 영화제가 끝나면 어떻게 지낼 건가.
▲너무 많은 생각과 자의식으로 너무 많은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아무 계획과 계산 없이 살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익 "상업영화 은퇴선언…제게는 약됐죠"
제2회 스마트폰영화제 집행위원장<br>"창작 욕구 치밀지만…당분간 안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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