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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들을 만나다

뉴햄프셔주 예비선거 취재 후기

[취재파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들을 만나다

지금 미국 워싱턴은 1월 17일입니다. 한국은 이미 18일에 접어들었겠죠. 오늘 워싱턴의 연방의사당 앞에서는 ‘의회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지난해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反월가 시위대의 표적이 올해는 미 의회로 바뀐 거죠. 정치와 정치권 인사들을 향한 국민의 분노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분노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바꿔' 열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 11월 미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야당인 공화당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죠. 물론 이 시위대들이 "1%만을 위한 미 의회와 의원들의 행태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 대기업적인 성향의 공화당에게는 악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길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늘 제가 하는 얘기가 공화당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지난 주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주를 다녀왔습니다. 공화당의 예비선거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슈아에 숙소를 정하고 취재는 맨체스터에서 했습니다. 차로 20분 정도 거리였습니다. 워싱턴에서 직접 맨체스터로 가는 비행기편은 요금이 비싸서 필라델피아를 경유해서 갔는데, 하나는 겨우 30인승용이어서 탈 때부터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좁고 답답하고, 기류에 많이 흔들리고…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사실 외국에서 온 특파원이 미국 정치인을 취재한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미국인의 마음을 잡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미국 언론을 상대하는 게 그들의 우선 순위에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취재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예비선거가 실시된 10일 아침 아침과 점심을 겸한 식사를 하기 위해 맨체스터의 '빨간 화살'(Red Arrow)이라는 식당에 갔습니다. 메뉴라고 해봤자 미국인들이 먹는 계란 두 개에 감자, 빵이 전부였지만 주는 대로 먹을 수 밖에 없어서 체념하고 있을 때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주를 포기하고 뉴햄프셔주에 올인(전력을 기울인)한 존 헌츠먼 전 주중 대사가 식당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부인과 수행원 이렇게 너댓명이 말이죠. 들어와서 식사를 시키고 주변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하는 모습이 그냥 맨체스터 주민 같았습니다. 굴러 들어온 호박(기회)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먼저 식사를 끝내고 문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무시하고 지나쳐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붙잡으리라 마음을 다지면서 심호흡도 했습니다. 문을 열고 헌츠먼 후보가 나오자 마자 인터뷰를 하자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헌츠먼 후보, 의외로 쉽게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미국 언론도 없이 한국의 SBS만 마이크를 들이밀었는데 말이죠.

                   

지금 미국인들은 더 나은 삶, 더 많은 소득을 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미국인들의 희망을 충족시킬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살짝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롬니 후보의 지난 말과 정책을 되돌아보면 일관성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죠. 지금 미국인들은 일관성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여기서 한 호흡 쉬더니 저를 보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항상 강했고 흔들림없었던 한미관계같은 일관성 말이죠."그런 후에 한국 말로 "감사합니다."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중국 대사를 해서 아시아 문화에 익숙해 있게다 싶기는 했지만 한국 말까지 그의 입에서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역 언론들과 미국의 인터넷 매체 기자들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고, 그가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하자 부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소득이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면 사람이 가장 많이 오는 투표소가 있는지를 지역 언론의 기자의 귀띔으로 알게 됐습니다. 바로 찾아갔습니다. 아쉽게도 20분쯤 전에 롬니 후보가 다녀갔다고 했습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정도로 기자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아수라장이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카메라 기자는 그만 땅에 넘어지는 바람에 밟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애석하지만 롬니 후보 취재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습니다. 대신에 미국 예비선거의 특징적인 면을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투표소 안에 대한 취재는 허용을 하지 않아서 밖에서 기다리다가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일반 시민들도 투표에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특징, 그리고 당원도 아닌 사람들이 왜 굳이 한 정당의 내부 경선에 참여해서 투표를 하는지 였습니다. 그런 질문들을 던지는 저를 오히려 미국인들은 이상하게 쳐다 봤습니다. "대선후보를 고르는 투표를 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미국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투표를 할 때 선관위원들이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관위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명부를 확인해서 이름 밑에 줄을 긋는 게 전부라는 거죠. 부정선거의 가능성이 없느냐고 했더니 한 선관위원은 "수십년동안 선관위원으로 봉사해왔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투표장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더군요. 돈으로 표를 사왔던 관행이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투표는 자유와 책임,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미국 정치인들은 돈에 관한 한 거의 제약이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선거자금을 얼마나 많이 모을 수 있느냐가 당락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선거야 말로 돈선거라고 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런 돈들이 공약집 인쇄, 텔레비전 광고 비용, 대규모 집회 주최 비용등으로 들어가지, 표를 대가로 유권자나 소속당 책임자에게 뿌려지는 경우는 없다는 거죠.

그렇게 취재를 끝내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롬니 후보를 만나지 못하면 맨체스터까지 날아간 보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롬니 후보의 일정을 알아보니까 맨체스터 남부대학이라는 곳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뉴햄프셔주 예비선거 승리 연설을 한다고 했습니다.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으로 말이죠. 미국 언론들 위주의 기자실도 마련돼 있었고, 지지자들과 함께 할 행사장도 준비돼 있었습니다. 기자실에는 롬니가 오지 않을 것 같고, 행사장에는 들어갈 수 없고... 일단 볼 일이 급해 화장실을 갔는데 그 앞에 의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기다리기에는 좋은 곳인 것 같아서 같이 갔던 스텦들을 오라고 해서 그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분쯤 지나고 나니까 갑자기 화장실 옆 출입구가 부산해 졌습니다. 경호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더니 먼저 롬니 후보의 잘난 아들들이 들어왔습니다. 이상하게도 저희를 막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잘하면 롬니 후보 인터뷰도 가능하겠다 싶은 순간, 롬니 후보가 부인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뉴햄프셔주 예비선거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경호원들이 제지했습니다. 그리고 롬니 후보는 정치인 특유의 건성 대답(듣지도 않으면서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무조건 고맙다고 하는)을 하면서 지나쳐 버렸습니다. 결국 롬니 후보 인터뷰는 소득이 없었고 다만 롬니 후보를 취재하는 모습을 찍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롬니 후보는 예상대로 아이오와주에 이어 뉴햄프셔주에서도 승리하면서 공화당 대선후보로 가는 유리한 길을 확보했습니다. 승리 연설을 마치고 나올 때는 아예 아까 제가 있던 곳에 장막을 쳐놓고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 차안에 탄 롬니 후보가 누군가 통화하는 모습을 찍기는 했지만 그의 육성을 직접 SBS 카메라에 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롬니 후보의 모습은 한국 정치권에서 선거 때면 나오는 대세론의 대표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후보가 다 된 듯한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대세론에 안주하고 도취했다가 결국 낙망하고 말았던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롬니 후보에게는 이번이 2차 도전입니다. 4년 전에는 매케인 후보에게 패퇴하고 말았죠. 절치부심하다가 이번에야말로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대선에 나가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좋은 상황을 맞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소수교파인 몰몬교 신자라는 점,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이 보기에 미심쩍은 중도성향의 정책노선을 견지해왔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본선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맞붙어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평가가 자산입니다. 롬니 후보가 오는 21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경선과 31일 플로리라주 예비선거까지 휩쓸 경우 올해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은 일찌감치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보름만 지켜보면 알 수 있겠죠. 미국 예비선거 제도와 유력한 대선후보들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취재였습니다.

* 이 글을 쓰기 하루 전 존 헌츠먼 후보가 대선후보 경선 참여를 중단하고 롬니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안될 선거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4년 뒤, 혹은 8년뒤를 기약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공교롭게도 헌츠먼 후보도 몰몬교 신자입니다. 두 사람의 결합이 중도성향 유권자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보수적인 기독교도인들이 많은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에게는 악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롬니의 대세론이 여전히 위력적이어서 다른 후보들의 대응이 얼마나 파괴력을 가질 지는 의문입니다. 뉴트 깅리치, 릭 샌토럼, 릭 페리 세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미국 언론들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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