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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기와 엄마만 있는 신혼집만 골라 턴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떼어내세요

[취재파일] 아기와 엄마만 있는 신혼집만 골라 턴다

지난 3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로 추정되는 시간 동안에 인천 서구 일대에서 빈집털이가 10건 넘게 발생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집들은 1층 공동 출입구가 전자 번호키로 폐쇄되지 않은 구형 아파트에 있는 집들. '빠루'라 불리는 철제 공구로 현관문 전자번호키를 뜯고 들어와 귀금속과 현금을 훔쳐갔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당한 집의 절반 가까이가 갓 낳은 아기와 함께 사는 신혼부부의 집이었습니다.

왜 신혼부부의 집이 주 범행대상이 됐을까요? 진주귀걸이와 목걸이와 반지, 다이아몬드 귀걸이와 목걸이와 반지, 예물시계, 순금으로 된 행운의 열쇠, 은가락지, 금가락지, 은수저. 피해자들에게서 들은 도난물품들입니다. 피해자는 25평형의 아파트에 사는 결혼한 지 2년도 채 안된 갓난아기가 있는 여성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위해 준비했던 귀금속과 아기 돌선물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바로 이점입니다. 귀금속은 도둑들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피해가정에는 사실 다른 돈될만한 물건들도 많았습니다. 명품 가방이나 DSLR카메라 세트와 렌즈 같은 고가의 물품들입니다. 하지만 도둑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명품이나 고가 전자기기들이 돈이 되려면 다시 팔아야 하는데 물건을 원하는 사람을 찾는데 시간이 걸려 경찰 추적이 쉽습니다. 현금이나 귀금속은 환금성도 높고 이른바 장물을 취급하는 상인들도 암암리에 존재합니다. 금이나 은은 녹인 후 다시 성형하고, 보석들은 다시 세팅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결혼한지 얼마 안된 부부들, 고민하고 힘들게 마련한 귀금속들인데 당연히 깨끗하고 소중히 보관해 왔겠죠. 보석 상자부터 보증서까지 그대로 말입니다. 돌 전 후의 아기가 함께 사는 집이라면 돌 반지와 축의금 같은 선물들도 잔뜩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도둑들에겐 돌 전후 아기와 함께 사는 신혼부부의 집이 최상의 범행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도둑들은 어떻게 이런 집만 쏙 골라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다른게 아니라 바로 "아기가 자고 있어요"라는 글이 써져있는 메모지나 스티커를 주목한 거로 추정됩니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스티커는 몇 년 전부터 아기를 가진 엄마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돌 전후의 아기들은 잠을 자다가 큰소리에 놀라 깨면 심하게 웁니다. 그러니 초인종 소리나 경적소리는 아기 엄마들의 적입니다. 그래서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많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에 보금자리를 만든 갓낳은 아기와 함께사는 신혼부부들이 이 스티커를 찾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 사람들 가운데 아기가 있는 집들도 많이 이 스티커를 붙입니다. 인터넷에서 예쁜 디자인을 공유하기도 하더군요. 아기용품이나 식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사은품으로 이 스티커나 푯말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스티커가 결국 도둑들에게는 '아기랑 엄마만 있습니다'라는 힌트를 준 게 돼 버린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에 도둑이 든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들은 출동한 경찰로부터 "이 스티커 왜 붙이셨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도둑들한테는 '아기가 자고 있어요'가 '귀금속 자고 있어요'로 보인다는 거죠. 피해자들은 경찰의 말 듣고 바로 현관문과 초인종에 붙여진 스티커와 푯말을 떼어내 버렸습니다. 최근 빈집털이가 극성을 부리는 지역에서는 형사들이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게 '아기가 자고 있어요'스티커나 푯말이 보이면 떼어내 달라는 부탁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아기가 막 태어나면 정말 할 일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의 등장으로 생활방식도 많이 바뀌죠. 집에 들여야할 물품들도 많아집니다. 그 와중에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엄마들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아기가 자고 있어요'입니다. 하지만 각박한 세상은 아기 엄마들에게 도움은 커녕, 해를 끼칩니다. 아쉽고 힘들지만 아기 어머니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떼어내시길 권합니다.

참고로 경찰에 따르면 고가의 수입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도둑들에게는 범죄표적 대상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고가 수입 유모차를 끌고 타는 엄마와 아기를 지켜보고, 어느 층에서 멈추는지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집이 빌 때를 노린다는 거죠. 복도식 아파트의 경우 집 밖에 아기 용품을 내놓고 있는 경우도 역시 '빈집털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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