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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뒤바뀐 유골 보도, 그 이후는

추석에서 설까지 풀리지 않는 고통

[취재파일] 뒤바뀐 유골 보도, 그 이후는

지난해 추석쯤 '뒤바뀐 유골, 애타는 유족'이라는 리포트를 했습니다. 여름 수해로 경기도 일대 공원묘지 곳곳이 무너져 내리면서 묘가 유실된 유족의 이야기였습니다. 공원묘지 측에서 부모의 유골을 찾아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뒤바뀐 것 같다는 내용이었죠.

간단히 설명을 하면 ㅈ씨는 어머니 묘지가 유실된 지 한 달쯤 지나  공원묘지 측이 동원한 유명의대 법의학팀에게 어머니 유골이라면 두개골 하나를 건네받습니다. ㅈ씨는 어머니가 생전에 발목에 금속판을 덧대는 수술을 했다고 말하며 다른 유골을 어머니 것이라고 지목했지만 법의학팀은 그런 유골은 없다고 말했다는군요.

ㅈ씨가 지목한 유골은 다른 유족인 건네졌고, 그 유족이 화장을 해보니 ㅈ씨가 말한 그 금속판이 나왔다는 겁니다. 두 집안은 경악을 했죠. 한 쪽은 내 어머니를 다른 사람이 화장을 한 것이고, 또 다른 쪽은 엉뚱한 유골을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제사까지 지내며 화장을 했으니…….

공원묘지 측의 해명은 달랐습니다. 묘지가 무너져 내리면서 금속판이 다른 사람의 뼈에 박힐 수 있다는 겁니다. 과연 그런지 서울대 의대의 이윤성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 교수는 상식대로 말해줬습니다. 골절수술용 금속판은 뼈에 나사까지 박는 것이고 나사와 뼈가 고착이 되기 때문에 절대 빠질 리 없다는 거죠. 토사에 휩쓸려 사라지고 남의 뼈에 박히고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정답을 알기 위해선 유전자 검사밖에 없는데 공원묘지 측은 유전자 검사 비용을 댈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묘지 훼손에 공원묘지는 책임이 없다는 약관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명절 때 성묘를 가기는커녕 유골이 뒤바뀐 게 뻔해 보이는 데도 어쩔 수 없는 유족들의 이야기가 추석 때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넉 달이 지나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유족 대표 분이 보내준 문자였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유골이 뒤바뀐 것이 확인 됐다는 내용입니다. 공원묘지 측이 도움을 주지 않아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셨더군요. 결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하소연을 하게 됐고 어렵게 도움을 받아 유전자 검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이 분들을 다시 만난 건 경기도 포천경찰서였습니다. 유골은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화장해 상처 난 유족의 마음은 어머니 유골이 경찰서 한 구석 상자에 보관된 사실에 또 한 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두개골을 안고 우는 불혹의 아들,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 유족은 어머니의 다른 유골이 아직도 유실된 흙더미 안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함께 공원묘지를 다시 찾았습니다. 사고가 난 지 6개월이 지났어도 무너져 내린 비탈면은 변한 게 없었습니다. 쓰러진 전신주, 내팽개쳐진 관 뚜껑, 수해의 상처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 덮어놓은 비닐 위에 눈이 덮여 있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이 유족과 어머니 유골이 뒤바뀌게 된 ㅈ씨는 더 안타깝게 됐습니다. 화장한 유골이 어머니라고 믿지만 이미 한 줌의 재가 된 상태에서 유전자 검사를 할 수도 없는 처집니다. 심증은 있지만 그렇다고 확증을 할 수 도 없는 상황…….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납골묘에 기대 흐느끼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공원묘지와 유족들의 갈등은 평행선입니다. 유족들은 부모의 유골을 경찰서에 마냥 보관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 공원묘지로 재반입을 요구했지만 공원묘지측은 거부하는 상태였습니다. 재매장을 원하면 역시나 비용은 역시나 유족들이 부담하라는 겁니다. 장소는 제공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어디로 장소를 정했는지 유족들에게 말을 하지 못하더군요. 넉 달 동안 같은 입장만 반복하는 공원묘지... 천주교 성당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데 다른 성당이 맡고 있는 공원묘지의 경우 재매장 비용까지 부담하며 도의적 책임을 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교가 되더군요.

공원묘지 측이 야속하다고 느끼는 건 이분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유족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수해이후 유골을 찾은 뒤 화장해 문제의 공원묘지 납골묘에 30년 계약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원묘지 측의 태도에 실망해 한 달 만에 이장을 결심했는데 공원묘지 측에게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는 군요. 이장하는 건 유족의 자유지만 이미 지불한 30년 어치의 사용대금을 환불해줄 수 없다는 겁니다. 계약조건이 그렇다는 건데... 지불한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도대체 이 유족이 무엇 때문에 이장을 하려는 건지, 왜 30년 사용료를 내고 납골묘를 사용하는지 생각을 못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더군요.

공원묘지 측이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지 몰라도 사후에도 부모에 대한 도리를 강조하는 우리 정서를 무시하면서 오로지 규정만 따지며 빠져나가는 건 지나친 심사가 아닌 가 생각됐습니다.

이 공원묘지에 묻힌 고인들이나 유족들도 성당을 다녔고 지금도 다니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성당에서 공원묘지를 운영하는 것 또한 교인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요? 종교마다 중요시하는 것 가운데 배려와 나눔, 사랑과 같은 덕목은 이번 사태의 어디에 녹아있는 걸까요? 궁금해집니다.

제가 만난 유족들은 이번 설에 성묘는 갈 수 있을 지요? 이번 보도가 나간 뒤 각종 교양프로그램에서 유족들을 만나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보도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서 내용을 다룬다고 해서 유족들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공원묘지측이 태도를 바꾸거나 할 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보도가 반복되고 쌓이면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동감하는 사람이 늘어날 테고 그러면 적게나마 지친 유족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작은 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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