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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나라, 의원들도 서열화?

[취재파일] 한나라, 의원들도 서열화?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현역의원의 하위 25%를 무조건 떨어뜨리는 방안을 내놨다. 방법은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여론조사. ①현역 의원을 얼마나 바꾸고 싶나. ②다른 후보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이 있나. 이 두 가지다.

당초 ▲의정활동 ▲교체지수 ▲경쟁력 ▲지역구 활동 등 4가지 지표를 활용할 예정이었지만 회의 과정에서 이 두 가지로 개수를 줄였다. 복잡하면 해석의 여지가 생기고 해석의 여지가 생기면 논란이 불가피한 공천의 생리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비용이 들더라도 표본을 크게 잡아 여론조사 결과에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도 이런 취지와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걸로 된 걸까?

◈ '19대' 예비고사 통과 석차는 102등까지

지금 한나라당의 안대로 한다면 현역 의원들에게 여론조사로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해야 한다. 서열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은 144명. 이 가운데 불출마 선언자 8명을 빼면 실제 공천 신청을 할 사람은 136명이다. 이들 136명을 1등부터 136등까지 석차를 매겨야 한다. 여기서 102등까지는 공천 신청을 할 수 있지만 103등 부터 136등까지, 그러니까 34명은 공천 신청 자격 자체가 박탈된다. 원서 내볼 기회마저 박탈한다는 것이니 대학 입시보다도 가혹한 셈이다.

하위 25% 탈락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전략공천 20%가 빠져 있다. 따라서 실제 물갈이폭은 50%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17대 때 46.5%, 18대 때 39%의 현역 의원들이 교체된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수준까지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잘라낼 숫자를 정해놓고 시작한다는 게 예전과 다르다. 한 초선 의원은 '살벌하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 누구나 납득할 만한 공천 기준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천 얘기가 나올 때면 시스템 공천, 원칙있는 공천을 강조했다. 시스템과 원칙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이번 공천기준과 부합한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공천기준이냐'에는 이견이 적지 않다.

                     

사실 의정활동의 성과를 계량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한다고만 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4대강 당론이 정해졌다 치자. 소신 껏, 혹은 당론에 밀려 4대강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닌 A와 그저 자기 살길만 찾아 다닌 B 가운데 누구에게 점수를 더 줘야 하나? 정상적이라면 당의 입장에서 일한 A에게 좋은 점수가 부과돼야 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 한나라당이 마련한 안대로라면 A는 좋은 점수 받긴 틀렸다.

그래도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여론을 무시할 순 없다. 공천 때마다 여론조사 만능론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좋게 얘기하면 민심은 천심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포퓰리즘이다. 한 친이계 의원은 이번 공천기준을 놓고 무조건 바꾸자는 여론에 영합한 안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여론은 바람을 타고 정당은 여론을 탄다. 그게 현실이다.

◈ 문제는 숫자부터 정한 기계적 물갈이

결국 현실을 감안한다면 여론조사라는 기준을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면 '숫자'로 승복시킬 수 있다. 이번 공천 기준을 두고 말이 많은 이유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기계적인 물갈이에 대한 반발이다. 도대체 그 25%는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 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갈이가 필요하다는데는 당내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건 박근혜 위원장이 말한대로 '납득할 만한 기준'에 미달했을 때다. (그 기준도 결국 여러 가지 지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주를 이루겠지만) 그 기준에 의원들이 동의하고 그에 따라 결정한다면 25%가 아니라 50%가 물갈이 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무조건 지역구 현역의원 4분의 1은 자른다고 정해놓고 가는 건 심리적 거부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 때도 물갈이폭이 40%대를 넘나들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기준에 따라 숫자를 정해야지, 숫자부터 정해놓는 건 본말전도다라는 말이다.

◈ 공천, '노력'보다 '터'가 좋아야 한다?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성적순으로 잘랐을 때 지역 차별이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수도권이다. 지금처럼 정권 심판론이 비등한 때는 아무래도 강세지역인 강남권이 유리하다. 교체지수는 몰라도 경쟁력 지수는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열세지역인 기타 지역은 교체지수와 경쟁력 지수 모두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어렵게 열세지역에 자리잡고 열심히 뛴 사람이, 손쉽게 강세지역에 공천받아 슬렁슬렁 일한 사람보다 성적이 뒤쳐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대학 서열화를 막아야 한다고 난리치는 마당에 정당 공천까지 성적 순으로 자르고 있다며 한나라당을 비꼬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지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당내 반발까지 일어난다면 이래 저래 힘든 작업이 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총선이 이제 석달도 남지 않았다. 정당에게 공천작업은 '산 넘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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