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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호화 유람선 '13일 금요일의 저주'?

[취재파일] 호화 유람선 '13일 금요일의 저주'?
지난 13일 밤 8시, 4천2백34명이 탑승한 11만 4천5백 톤급 초대형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이탈리아 서해안 질리오 섬 인근에서 갑자기 암초에 부딪히면서 좌초됐습니다. 선체 왼쪽 부분이 100미터 가까이 찢어지면서 배는 순식간에 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배는 결국 옆으로 뒤짚어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승객들이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했는데 미처 구명보트를 구하지 못한 일부 승객들이 공포에 질려 차디찬 바닷물에 뛰어들면서 승객과 승무원 등 6명이 숨졌고, 10여 명이 여전히 실종된 상태입니다. 사고 당일인 13일이 공교롭게도 금요일이라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13일의 금요일 저주'라고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1천5백 명 넘게 목숨을 잃은 최악의 해난 사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라서 마치 '데자뷰' 같기도 한 두 사고가 자연스레 오버랩 되고 있습니다.

4억 5천만 유로, 우리 돈 7천억 원을 들여 2005년에 완성된 이 최신식 유람선 콩코르디아호가 이렇게 어이없이 전복된 이유는 뭘까요? 사고 당일 기상상태는 비교적 양호했고 선상에서 테러나 폭발 같은 돌발 사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상하시는대로 역시 인재였습니다.

사고 직후 배가 정상 항로를 벗어나 섬에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 달리다 암초에 걸려 넘어졌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나오면서 이탈리아 검찰은 선장과 1등 항해사를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해 사고 경위를 조사했습니다. 선장이 친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배를 의도적으로 해안으로 붙였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이 배의 수석 항해사의 아내가 질리오 섬 해변 근처에 살았는데, 그 때부터 인사를 보낼 요량으로 질리오 섬 인근에 배를 가까이 붙이고 기적 소리를 내왔다는 겁니다.

           


놀랍게도 선장, 프란체스코 세티노는 마도로스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2002년 보안담당 책임자로 입사해 4년 뒤 선장으로 승진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수십년 간 배를 운전해오던 항해 전문가에 비해서는 숙련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콩코르디아호는 지난 2008년 11월에도 접안도중 충돌사고를 일으킨 전력이 있습니다.

물론 11만 톤급 대형 유람선을 선장 혼자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 선장이 기본적인 사명감이나 책임감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암초에 걸려 배가 전복됐는데도 단순한 전기 배선 문제라며 사실을 은폐하고 늑장을 부리다 대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비규환이 된 탑승자들을 안심시키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배에 남아 최선을 다하기는 커녕 위험에 처한 배를 버리고 선장이 승객보다 먼저 구명정을 타고 탈출해 버린 겁니다. 선장이 사라진 배에서 일사분란한 대피 작업이 이뤄졌을 리 만무했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구명보트를 구하지 못한 승객들 가운데 일부가 바닷물에 뛰어들면서 생기지 않아도 됐을 애궃은 사망자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이 파렴치한 선장은 구조대의 필사적인 구조작업을 육지에서 담요를 두른 채 옆 집 물구경하듯 지켜봤습니다.

     


여기서 1912년 4월 14일 새벽 2시 북대서양 한가운데서 30만 톤짜리 빙하와 충돌한 비극의 '타이타닉호'로 잠시 얘기를 돌려보겠습니다. 처녀항해였던 타이타닉호는 은퇴를 앞둔 에드워드 스미스라는 베테랑 선장이 마스터 키를 잡았습니다. 4만6천 톤급의 타이타닉호는 그때까지 바다에 떴던 가장 큰 선박이었고 웬만한 사고로 물이 차더라도 배를 떴있도록 지탱할 수 있는 16개의 수밀격실(水密隔室)이 설치된 말 그대로 '결코 침몰하지 않는 배'로 통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자만심이 화를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사고 당일 스미스 선장은 빙하를 조심하라는 무선 경고를 6차례나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21노트의 고속으로 빙하출몰 지역을 항해했습니다. 탐조등을 달지도, 관측요원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항해술로 위험 지역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망지기가 뒤늦게 빙하를 발견하고 위험을 알렸지만 고속으로 달리던 배를 돌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워낙 큰 빙하와 부딪힌 나머지 타이타닉호는 격실에 차례로 물이 차면서 마침내 침몰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때마침 근처에는 캘리포니아호라는 배 한 척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타이타닉호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캘리포니아호의 승무원들은 타이타닉이 보낸 SOS 조명탄을 축포로 오인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던 겁니다. 고작 20대밖에 안 되는 구명보트에는 2,200명의 승무원과 승객을 모두 태울 수 없었습니다. 구명보트에 먼저 오른 건 1등석과 2등석 승객들이었습니다. 이렇게 7백 명이 목숨을 건졌지만 가난을 벗어나 미국에서 새 삶을 찾으려던 3등석 승객들은 여자와 어린이, 노인 순서로 자꾸만 뒤로 밀리다가 결국 1천5백 명이 통째로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최후의 순간 스미스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배를 떠나지 않고 승객들 탈출을 돕다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당시 '타이타닉호'에는 2천2백여 명이 타고 있었는데, 대부분 유럽인들이었습니다. 1, 2등석은 유럽 귀족들의 차지였고, 1등석 요금의 30분의 1에 불과한 3등석에는 미국 이민자를 포함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배에 혹시 한국 사람이 타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다행히 한국인은 없었지만 중국인 10명과 일본인 1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호소노라는 이름의 이 일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지만 타이타닉 때문에 일생동안 엄청난 고통을 받아야했습니다. 철도기술자로 영국에서 공부하다 귀국 중이던 호소노가 겪은 고초는 이렇습니다. 역시 살아남은 로렌스라는 이름의 영국인 여자 승객 한 사람이 타이타닉 침몰과정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수기로 써냈는데 이 수기에서 "아비규환 중에 한 일본 사람이 내가 탄 보트에 무리하게 끼어들어 살아 남았다"고 폭로했던 겁니다.

신사의 나라를 표방한 영국과 미국 사회에서는 목숨 부지를 위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을 한 일본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일본에서조차 일본인의 수치라며 차가운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살아 돌아왔는데도 환영은 커녕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잠적한 호소노는 비겁자라는 낙인찍힌 채 한마디 해명도 못해보고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호소노의 억울함은 그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1992년이 되어서야 풀렸습니다.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에서 인양된 겁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타이타닉호의 유물과 관련 기록들을 조사한 결과 호소노는 무리하게 로렌스가 탄 구명보트에 올라타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로렌스가 탄 구명보트의 번호는 5호였고 호소노씨가 탄 구명보트는 10호로 서로 다른 배였다는 기록이 발견된 겁니다.

                   


다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로 돌아오겠습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직후인 1912년 '타이타닉' 때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나, 유럽 크루즈여행이 결코 낯설지 않은 2012년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에는 32명의 한국인 승객과 2명의 한국인 승무원이 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34명 모두 무사했는데, 특히나 신혼여행을 떠난 29살 동갑내기 한국인 교사 부부가 사고가 난 지 24시간 넘게 선실에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전 세계 외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으니 일종의 격세지감마저 느껴질 지경입니다. 이 부부는 배가 갑자기 기울자 죽음을 예감하고 작별인사까지 나눴다고 합니다.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며 사랑을 확인했다는 부부의 인터뷰를 보면서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열연했던 헐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의 주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상됐습니다.

                 


'타이타닉호'와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1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둘 다 인간의 경솔함과 무책임함에서 빚어진 안타까운 사고였고, 그 속에는 인간 세상의 애환이 극적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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