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로 뚝 떨어진 매서운 날씨. 서울 남대문 시장 한편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올해 70살이 된 할머니는 30년 동안 남대문 시장의 길거리가 일터였습니다.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번 돈으로 딸을 키우고, 지금도 거리에 나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앞에는 팔 물건은 없고 두꺼운 담요들만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채소를 파시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채소들이 얼까봐 담요로 덮어주셨던 겁니다. 이런 모습으로 앉아 계시는 할머니 앞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갑니다. 담요 속에 채소는 단 하나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냥 그렇게 길에 앉아계셨습니다.
“할머니, 이렇게 춥고 한데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이렇게 해 놓으시면 오늘 하나도 못 파시겠어요.” “그래도 어찌 그러누. 있다 보면 단골이 올 수도 있고 하나라도 팔아야지. 그리고 그냥 들어가도 시장에 청소비도 내야하고... 청소비라도 벌어야지." 팔 야채를 밖으로 내 놓을 수도 없는 혹한속에서 꽁꽁 언 찬밥을 김치와 넘기며 길거리에 앉아 청소비라도 벌어야 하는 할머니. 대체 이 청소비라는 게 뭘까요.
서울 남대문 시장을 관리하는 주식회사 남대문시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각 상가들의 운영위원회가 있습니다. 주식회사 남대문시장과 상가연합회는 허가를 받고 상인들에게 남대문 시장의 청소를 대행해 주고 있다며 노점상을 대상으로 청소비 명목으로 매일 매일 돈을 걷고 있습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과 같은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노점상에게 세금처럼 청소비를 거둘 아무런 근거도 기준도 없다는 겁니다. 노점상이 있는 곳은 대부분 관할 자치구 땅이기 때문에 시장측에서 간섭할 근거가 없습니다. 설사 노점에서 쓰레기가 나오고 이를 시장에서 청소를 해 준다는 이유로 청소비를 받는다고 해도, 청소비 금액을 규정도 없이 한 달에 5만 원에서 최고 50만 원 까지 마음대로 받았습니다.
같은 노점이라도 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남대문시장 노점상 연합회 회원 260여 명에게는 아예 받지도 않았습니다. 거리에 앉아 있는 힘없는 노인만이 그들의 먹잇감이었습니다. 심지어 공공화장실 이용요금까지 내라며 돈을 거뒀습니다. 결국, 청소비는 아무런 근거나 기준 없도 없는 그냥 자릿세인 겁니다. 물론, 얼마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주식회사 남대문시장과 상가연합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남대문 시장의 관습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관습이라는 표현만으로 이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힘없는 노점상들에게 군림해 오면서 힘들게 번 돈을 강탈하는 행동은 결코 관습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임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길을 나서면 70살이 넘은 노구를 끌고 팔고 있던 물건을 급하게 정리해서 골목으로 숨어야만 한 노점상들에겐 이 관습이 고통이었습니다.
경찰이 지난 1년 간 어렵게 노점상들의 마음을 열어 단속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노점상들에게 돈을 갈취한 경비원들과 청소 대행업체에게서 뇌물을 받은 상가연합회 임원을 비롯해 4명을 구속했습니다. 잘못된 관습이 깨지는 의미 있는 수사이고 결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9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구속 입건에 그쳤습니다. 잘못된 싹은 그 뿌리부터 뽑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지도층은 불구속 입건에 그쳤습니다. 개인적인 비리가 없었다 하더라도 조직의 잘못에 대해 지도부에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만 앞으로의 지도부들이 이런 잘못된 행위를 관습이라는 포장을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주식회사 남대문 시장을 비롯해 상가연합회 임원들의 나이가 70살을 넘긴 고령들이 많고, 법적 테두리 속에서 좀 더 강력한 처벌이 어려웠을 현실적인 한계에 대해 공감도 하면서 이번 기회에 좀 더 강력한 처벌을 통해 근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노점은 불법입니다. 그래서 노점을 하는 사람들은 당당할 수 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대문 시장의 거리에 나오는 노인들에겐 1평 남짓한 길거리의 공간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 곳에서 찬밥에 김치로 점심을 때우면서 장사를 합니다. 그 돈으로 자식들을 키워내고, 그날 하루 주린 배를 채웁니다. 그래서 이들 노점을 단속해야할 서울시와 관할 자치구도 조그만 공간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눈을 감아주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