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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셸과 여치', 닮은 꼴 두 여걸

[취재파일] '미셸과 여치', 닮은 꼴 두 여걸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2.01.13 16: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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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계가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성공이냐 공화당의 정권 탈환이냐에 주된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도 달갑지 않은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조디 캔터라는 뉴욕타임즈 기자가 쓴 책 한 권이 미국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던지고 있습니다. 제목인 즉, 'The Obamas', 우리 말로 번역을 하자면 '오바마 가(家)'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필자는 책에서 미셸 여사가 환경운동이나 아동문제에나 관여하는 '그림자 형 퍼스트 레이디' 이미지와는 다르게 정치적 야망이 대단한 백악관의 강력한 배후 세력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책 속에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 전, 현직 관계자 등 30여 명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라면서 필자는 미셸 여사가 국정운영과 관련해 대통령 보좌관들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셸을 "점점 더 영리해지는 정치 플레이어"라고 표현하면서 그녀가 국정 현안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과도 대립했고, 남편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들 참모진 교체까지 요구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초 미셸은 오바마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건강보험개혁법과 관련해 공화당의 요구를 너무 많이 수용했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그 책임을 참모진에게 돌렸다는 겁니다. 흔히들 말하는 '베갯머리 송사'가 백악관에서도 이뤄졌다는 얘깁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금융 위기로 미국 조야가 시끌시끌하던 2009년, 미셸이 영화배우 조니 뎁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을 대거 초대해 백악관내에서 '비밀 파티'를 개최했다는 얘기도 실려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심지어 백악관 참모들조차 미셸에 대해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고 필자는 오바마 행정부 임기 초반의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필자는 미셸과 오바마 대통령의 오랜 참모였던 이매뉴얼을 '대통령의 두 배우자(spouses)'로 비유하면서 "한 명은 공개적이고(public) 공식적인(official) 배우자, 한 명은 은밀하고(private) 비공식적인(informal) 배우자"라고 비꼬기까지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매뉴엘 비서실장이나 기브스 대변인 두 사람 모두 차례로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필자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사려깊지 못한 영부인이 미국의 국정을 농단했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대권을 놓고 겨루게 될 공화당 후보진영에게는 훌륭한 공격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백악관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습니다. 영부인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라면서 '비밀파티'도 퇴역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공개적인 할로윈 파티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시카고 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매뉴엘이나 기브스 전 대변인도 자신들과 영부인간에 어떠한 문제도 없었으며 지금도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거들었습니다. 급기야 당사자인 미셸 여사도 CBS방송에 직접 나와 책 내용을 부인하면서 자신을 음해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을 '성난 흑인 여성'으로 묘사하고 싶어한다며 적극적으로 반격했습니다.

중산층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을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성공한 법률가로 유명 로펌에서 일하다 수습으로 막 들어 온 후배 법조인 오바마를 만나 결혼한 미셸은 사실 남편을 뛰어넘는 유능한 여성이었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이자 선거운동 때는 핵심 참모역할을 하며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을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백악관 입성 뒤에는 육아와 보건문제나 환경보호 등 이슈에 한정해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며 그림자 내조를 보여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습니다. 미셸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곧잘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재선을 앞두고 야망이 넘치는 숨은 여성 권력자로 이미지가 변질될 위기에 처한 겁니다.

사실 여성 통치자들의 활약상은 시공을 초월해 뭇 사람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중국사를 보더라도 수많은 여걸들이 역사서에 등장하는데 이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세 사람을 꼽는다면 아마 한나라 유방의 황후였던 여 태후, 당 나라의 측천무후, 마지막으로 청나라 말의 서태후일 겁니다. 철권을 휘둘렀던 세 여인 모두 잔인하기로 말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중국의 3대 악녀들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본명이 '여치'인 한나라의 여태후가 가장 악랄하고 못되기로 유명합니다. 요즘 SBS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도 여치(정려원 분)가 극중 천하그룹 진시황 회장의 외손녀딸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불 안 가리는 불같은 성격에 안하무인까지 한나라를 뒤흔들었던 '여치'와 아주 흡사합니다.

아버지가 점찍은 나이 많은 농민인 유방에게 어린 나이에 시집간 여치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 간에 전쟁이 시작되자 초나라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 유태공을 모시고 있는 여치와 유방의 두 아이를 사로잡아 유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전장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고생한 끝에 마침내 남편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에 오르자 황후가 된 '여치'는 숨겨둔 정객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여치는 개국 최대의 공신인 대원수 초왕 한신이 반란을 꾀하도록 유도한 뒤 그를 죽이고, 역시 개국 공신인 대량왕 팽월도 모함해 죽게 만듭니다. 남편에게 짐이 될 만한 측근들을 자신이 나서서 정리한 겁니다.

유방이 죽고 아들 혜제가 즉위하자 태후가 된 여치는 황제를 위협할 수 있다며 유방의 서자들을 모두 도륙하는데 이 와중에서 초왕의 모비 척 씨의 두 팔과 다리를 자르고 눈과 귀도 멀게 해 변소에 내던져놓고 인간 돼지라고 혜제에게 보여주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이를 본 아들 혜제는 충격을 받아 사망하고, 여치는 손자를 다시 황제로 삼아 태황태후 자리에 오릅니다. 태황태후가 된 다음 여치는 남편의 유훈을 어기고 황실의 친인척들인 '유씨'들을 차례로 죽이고 대신 그 자리에 '여씨'들을 올립니다.

미셸과 여치, 두 여걸의 삶의 궤적과 그녀들을 둘러싼 환경이 어쩌면 닮아 보이기도 하고 또 사뭇 달라보이기도 합니다만 '권력'을 바로 곁에 둔 인물들이 마치 비좁은 담장 위를 한발 한발 조심스레 걷듯이 신중하고 사려깊게 행동해야 나라가 편하다는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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