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2010년에 이어 또 과징금 처분을 받았습니다. TV, 노트북, 세탁기 가격을 담합했다 걸렸습니다. 삼성전자 258억 원, LG전자 188억 원. 과징금으로 총 446억 원이 부과됐지요. 공정위는 이번 조치로 시장 질서를 바로 잡았다고 으쓱해 합니다. 세 가지 제품의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산뜻한 전망도 내놨습니다. 400억 넘는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는 언론들의 호들갑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걸까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브리핑을 보고 있자니 문득, '뿌리깊은 나무'의 저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지금 상황을 세종이 봤다면 아마 그리 이야기했을 겁니다. 으름장을 놓는 공정위도, 잘못했다며 고개 숙이는 두 회사도, 철퇴 운운하는 언론도 내막을 들여다 보면 헛웃음만 나옵니다.
두 회사가 446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긴 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내는 돈은 129억 원뿐입니다. LG는 한 푼도 안냅니다. 삼성은 절반만 냅니다. 리니언시(Leniency, 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라는 제도 때문입니다. 자진 신고를 하면 1순위 기업에는 100%, 2순위 기업에는 50%의 과징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입니다. 당근을 줘서 기업들의 자수를 유도하자는 취지인데요. 근데 문제는 가전시장을 삼성과 LG가 나눠 먹고 있거든요. 어찌됐든 담합을 인정만 하면 50%는 먹고 들어가는 셈인 거죠.
삼성전자 직원의 진술을 보면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2008년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드럼업이라는 세탁기가 대박을 쳤습니다. 가격이 쌌던 모양입니다. 12kg 용량인데 삼성, LG의 10kg 용량 값이었거든요. 이게 많이 팔리니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 시장점유율이 각각 4%P씩 떨어졌습니다. 난리가 났겠죠. 그래서 두 회사는 10kg 세탁기 값을 내렸습니다. 가격경쟁에 들어간 거죠. 그래야 팔리니까요. 서로 경쟁하듯 가격을 내렸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1, 2등인데. 더 쉬운 방법이 있잖아.' 세탁기 시장은 삼성과 LG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그냥 쉬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모여서 대책을 세운 거지요. 이른바 담합. 서로 출고가를 공개하고, 떨어진 가격을 다시 올리고, 최저가 상품을 생산하지 않기로 하고 등등. 1등과 2등이 짜고 3등 죽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테니까요. 세탁기 뿐이 아니었습니다. TV와 노트북 담당자들도 모였습니다. 200개가 훨씬 넘는 모델이 이렇게 담합이 이뤄졌습니다.
LG가 자수했습니다. 담합이 있었노라고. 그래서 공정위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삼성도 자복했습니다. 담합했다고. 그리고 두 업체는 과징금을 면제받았습니다. 그래서 LG는 과징금을 안내도 됩니다. 삼성은 129억 냅니다. 129억 원이면 어마어마한 거 아니냐고요? 그런가요? 이번 담합으로 삼성이 번 돈이 얼마나 될까요? 삼성이 답을 할까요? LG가 답을 할까요? 아니오. 물었지만 답하지 않습니다. 매출은 영업 기밀이니까요. 오히려 묻는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요. 두 기업 모두 간부들의 솔직한 답은 그렇습니다. "과징금.. 뭐 그 정도면 별로 큰 돈 아닙니다. 아무 타격 없어요. 허허"
공정위는 생색내니 좋고 삼성과 LG는 과징금 조금 내고 어마어마한 돈을 버니 남는 장사입니다. 그럼 446억 원을 부과했다고 떠들어 댄 언론은요? '부과했다는 팩트는 맞다'고 답할 겁니다. '부과는 했고, 절차에 따라 면제를 받은 것'이라는 거죠. 사실 리니언시가 문제 있다는 기사는 구문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 이어진 문제이기도 하고요. 공정위원장도 문제를 인정하고 손보겠다고 했습니다. 경제부에 막 발령을 받아 어리둥절한 제 눈에만 신기해 보이는 게 맞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벌이 존재하는 취지는, 잘못된 일을 막자는 게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잘못한 놈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다음 입니다. 이번 조치로 앞으로의 담합을 전부 막을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제도로는 대기업의 횡포와 반칙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습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실무자들의 담합이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도를 고치는 중이지 않냐고요? 그럼 고작 129억 과징금 내게하고 시장질서를 바로잡았다고 호들갑 떠는 자화자찬은 하지 말아야지요. 염치가 있다면 말이죠. 정초부터 생색에만 한껏 취한 공정위와 뒤에서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삼성과 LG를 보고 있자니 어째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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