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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 자체로 완전한, 예술의 힘!

지난 주 '예술의 힘으로 다시 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8시 뉴스] '예술의 힘'으로 다시 서다…소통에 능숙해져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060827

제목만 보고도 '무슨 이야기인 줄 알겠다'고 생각하신 분들 있으실 겁니다. 예술이, 문화가, 한 사람의 인생에 자극이 되고 힘을 주는 사례는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요. 

제 기사의 내용도 생각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1) 얼마 전까지 노숙인이었던 분들이 함께 서울발레시어터로부터 발레를 배우며 살아가는 용기를 얻게 됐다는 이야기와, 2) 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상으로 악기 레슨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렇게 두 미담을 다뤘습니다. 일종의 재능기부인데요, 학생들 뿐만 아니라 가르치고 지도하는 이들도 "배운 게 많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훌륭한 미담들이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노숙인 출신의 임진희 씨는 발레를 배우고 나서 새 삶이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선생님도 임씨를 비롯한 학생들이 "언제나 무력하게 아래만 쳐다보던 분들이, 이제는 턱을 들고 어깨를 펴고 자신감 있게 걷는다"고 놀라워하셨습니다. '턱을 들고 어깨를 펴고 자신감 있게 걷는 일', 그것이 그들에게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었는지 볼까요.

임 씨와 함께 발레를 배웠던 또 다른 노숙인 출신 발레리노 오현석 씨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일에 굉장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작고, 시선은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단원들과 대형 무대에서 발레 공연을 준비하는 지난 두달동안, 오씨는 비어있는 객석을 보면서도 꽉 들어찬 관객들을 상상했습니다.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가 극을 완성하는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정해진 율동을 해냈습니다. 자신이 맡은 '변호사'역을 위해선, 더 자신감있는 태도로 객석을 바라봐야 한다는 선생님의 지도를 성실히 해냈더니, 이젠 무대가 아닌 일상 생활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는 그의 태도가 달라진 겁니다. 사람을 만나는데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니까, 이후의 일은 더 순조롭게 착착 진행됐습니다. 노숙이 아닌 자립을 위한 준비에 힘이 붙었고, 사교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오 씨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기적 '엘 시스테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 주변엔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말해줄 선례들이 많습니다. 예술교육은 소외계층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좋은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제 기사의 결론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예술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 교육은 소외 계층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 방법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같은 부서에 계시는 김수현 선배가 잘 보았다며 이런 말을 건네셨습니다. "예술 교육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됐을 때 갖는 비경제성 때문에 뒷전에 밀렸던 것에 비하면 요즘같이 관심을 받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야. 그런데 이런 경제적 가치나 사회적 가치로 증명하지 않더라도, 예술교육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건데 말이지."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습니다. 전날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두고 30분 넘게 고민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예술교육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 때에만 존재의 이유가 설명되는 식'이 아니길 바랬는데,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소외 계층의 '효과적인 지원 방법'으로서 의미를 갖는 예술 교육이었던 겁니다. 

문화계에 종사하는 분들, 특히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만 운영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대체 우리가 하는 일의 생산성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요?"  서울시향이, 국립발레단이, 국립오페라단과 국립극단이, 그들이 하는 일이 어떤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일일이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저 유흥과 오락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예전에 비하면 예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놀라운 발전이지만, 더 나아가 가까운 곳에 예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그야말로 '문화선진국'이 될텐데요, 아직 우리 사는 세상이 거기까지는 아닌가 봅니다.

저부터도 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미담을 찾아 나섰지만, 사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공감해야 하는 기본 전제는 예술이 그 자체로 갖는 힘, 본연의 의미일 겁니다. 이런 좋은 사례가 없더라도, 예술은 그 자체로 훌륭하고 강력합니다. 앞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투자가 '수혜자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닌, 그 자체로 의미를 가져 확대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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