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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농민들은 노숙자가 아닙니다

[취재파일] 농민들은 노숙자가 아닙니다

#농민? 노숙자?

지난 9일, '농촌 어르신들이 고용센터에서 며칠 째 밤을 새우고 있는데 안쓰러워서 못 보겠다' 는 제보를 받고 달려갈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경기도 이촌 고용센터 앞이었습니다. 길거리에 난로는 기본이고 겹겹이 껴입은 겨울 외투에 바닥에는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 담요, 또 그 위에 이불...처음 보시는 분들은 아마 노숙자라고 착각하셨을 겁니다.

이천 고용센터 건물을 빙 둘러 줄이 30-40미터 정도 이어진 진풍경. 대부분이 60-70대 농촌 어르신들이었는데요, 이 중에 길게는 이틀 동안 집에도 안가고 그 자리를 지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준비해 간 온도계로 기온을 재봤습니다. 영하 6.3도. 그런데도 많이 고단하셨는지 그 추위에 주무시는 분들도 계셔서 마음이 많이 아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경기도 의정부 고용센터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었는데요, 이천쪽보단 줄이 좀 짧긴 했지만 농민들의 '밤샘 줄서기'는 최근 전국 고용센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외국인 농사 일손'을 모셔오기 위해서라는데...

'밤샘 줄서기'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은 전국의 고용센터가 농민들에게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해주는 날이었습니다. 농촌 일손 씨가 말랐다는 말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데요, 이러다 보니 우리 농민들 외국인 근로자를 한 명이라도 더 채용하기 위해 그렇게 건강을 담보로 사투를 벌인 겁니다.

이날 아침 배정 시간이 다가올수록 농민들의 자리 다툼이 곳곳에서 벌어지더니 급기야 몸싸움까지 이어졌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 받을 수 있는 안정권은 번호표로 150번 정도인데 농민들은 4백 명 가까이 왔거든요. 150번 대 밖에 있는 농민들로선 염치를 거두고 필살의 '새치기'를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2~3일 '밤샘 줄서기'한 다른 농민들 입장에선 가만히 두고 볼 일은 아니었겠지요.

이촌 고용센터는 3백50번의 번호표가 순식간에 동이 났고, 의정부센터 역시 눈깜짝할 사이에 130번의 번호표가 마감됐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데려가느냐 못 데려가냐에 따라 한해 농사가 달린 문제라서 농민들 사이에는 희비가 엇갈렸는데, 비교적 앞자리 번호표를 받은 농민들은 그 번호표를 '로또'라고 부르며 싱글벙글 하시더군요. 반면에 가망 없는 번호표를 받은 농민들은 울상을 넘어 울화를 터트리셨습니다. 두 모습이 다 제게는 안타깝고 불편한 모습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외국인 근로자를 '모셔왔는데'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그들 중엔 '나 일 못하겠다' 이러면서 드러눕는 사람과 아예 사라지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하는데요, 모셔도 걱정, 못 모셔도 걱정인 농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농촌에 외국인 근로자를 좀 더 허하라'

농민들은 왜 외국인 근로자 모시기에 이토록 목을 맬까요. 이유는 비용입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줘야 하는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월 103만 원 정돕니다. 이 돈을 주고 농촌에서 일하려는 내국인 인력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지요.

여기서 외국인 근로자 배정 과정을 잠깐 살펴볼까요? 외국인 근로자는 쿼터제를 통해 농업과 제조업 등에 배정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해 5만7천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는데 이 가운데 2천7백 명이 올 상반기 농가에 배정된다는군요. 반면 제조업 분야에 배정되는 인원은 2만5천 명, 거의 10배 정도 됩니다.

농민들이 '왜 농업을 홀대하느냐'는 불만이 나올 법한 대목입니다. 외국인 근로자가 지금 우리 농촌 현실에서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면 그들에 대한 공급이라도 충분히 해줘야 한다는 농민들의 목소리에 관계 당국이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래야 더는 고령의 농민들의 '밤샘 줄서기'가 사라지지 않올까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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