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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머리맡에 매달려 있는 탯줄의 의미

[취재파일] 머리맡에 매달려 있는 탯줄의 의미

결혼을 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압박'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몸으로 느껴집니다. 스치듯 지나는 사람들조차 "좋은 소식 없냐"고 물어대니, 어지간히 무덤덤한 마음이 아니면 웃으면서 넘기기도 뭐한 상황이 반복되곤 합니다. 슬슬, '이제 나도 산모 대열에 합류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입양전문기관을 취재하게 됐습니다. 버려진 아이들 가운데 미혼모의 자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부분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제가 간 곳은  '동방사회복지회'라고 3대 입양 전문기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탕한 성격의 가족지원부장님을 따라 입양가기 전 아기들이 있는 보호소로 올라갔죠. 아기들을 만나면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면서요. 하지만 문을 딱 여는 순간 "어머나!"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너무나도 조그맣고 귀여운 갓난아이들이 수십여 명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유 먹는 아기, 빽빽 우는 아기, 자는 아기. 보육사 선생님이 정신 없이 돌보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옷을 갈아 입고, 신생아 감염을 막기 위해 손을 소독하고 왼쪽 방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취재간 게 1월 2일이었는데, 그때로부터 사흘 전 그러니까 지난해 마지막 날 태어난 아이부터 가장 길게는 백일이 지난 아이까지 함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엄마 품에 있어도 모자랄 신생아들이 이곳에 오게 된 걸까. 부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 오는 아기들은 모두, 한 명도 예외 없이 미혼모가 낳아 친권을 포기한 아이들입니다. 생명이 너무 소중해서, 아니면 낙태할 기회를 놓쳐서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일단 낳기는 낳았지만 도저히 기를 형편이 안 돼 입양을 원한다는 뜻을 밝힌 아기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기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인 민호입니다. (가명입니다. 입양이 확정된 아이거든요.) 민호는 10대인 엄마에게서 태어났는데, 원래는 엄마와 마찬가지로 10대인 아빠가 함께 낳아서 기르기로 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10대 아빠에게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엄마는 혼자가 됐고 결국 병원에서 민호를 낳자마자 이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다른 아기들도 상황이 비슷비슷해서 10대가 엄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기들은 유독 체중이 가볍습니다. 3킬로그램을 넘는 아기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보육사 선생님들 이야기로는 미혼모들이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임신 사실을 떳떳하게 알리지 못하다보니 일단 제대로 먹질 못하고, 또 만삭까지 복대로 배를 칭칭 감고 다니면서 아기들이 잘 자라지 못한 탓이라고 하는데 제가 조심스레 안으면 안을수록 아이들의 안타까운 운명이 가슴에 파고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기들을 둘러보던 도중 머리맡에 탯줄이 매달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탯줄이 있을까? 혼자 대답을 추측해봤습니다. 탯줄은 보통 일주일 정도 있다가 떨어지고,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이 곳으로 오니까 탯줄이 있겠지. 그럼 왜 보관을 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좀처럼 혼자 찾기가 어려워 부장님께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놀라웠습니다. 입양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직접 낳은 것처럼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탯줄을 보관했다가 함께 보낸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신생아일수록 입양 선호도가 높다고 하는데요, 보통 요즘 산후조리원에서 한 달 정도 있다가 집에 가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갓 태어난 아기를 입양할수록 주변에 보다 더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양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자아기를 선호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는게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를 잇기 위해 남자아기를 입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키우기가 비교적 쉽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또 자신의 자녀를 다 키운 뒤, 사회에 기여도 할 겸 아기의 재롱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면서 여자아기가 훨씬 더 입양이 잘 된다는 겁니다. 장애가 있는 아기는 우리나라에선 거의 입양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까 이곳에서는 쓰지 않을 게요.

취재를 마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기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던 아기, 황달이 심해 눈이 가려진 채 젖이 먹고 싶어 입을 오물대던 아기까지. 모두 너무 사랑스러운 생명인데 한 번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고, 보호소에 와서도 마치 물건처럼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싶어서 속이 쓰렸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도 아기들이 새 가정을 얼른 찾아서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겠죠.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동방사회복지회 1층에 마련된 미혼모 자립카페에 들렀습니다. 뉴스 시간이 3시간 정도 밖에 남지 않아 급했지만, 들르지 않으면 마음에 걸릴 것 같아서요. 힘들지만 사회적 편견을 견디면서 세상 속에 스스로 서려고 하는 엄마들이라는 생각에 유난히 커피가 맛있고 달았습니다.
그러고보니 후원 신청서를 집어들고 왔는데, 작성만 해놓고 아직 보내지를 않고 있었네요. 이러니 기자들이 말로만 떠든다는 비난을 받나 봅니다. 반성하고 얼른 보내야겠어요. 부디 아기들도, 그리고 용기를 내서 살아가는 그 미혼모들도 힘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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