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영국의 축산농가에서는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육골분’ 사료는 말 그대로 고기와 뼈로 된, 다시 말해 가축들의 사체를 가공해 만든 사료입니다. 소는 원래 위가 4개인 반추동물로 풀을 먹고 위 안에 있는 미생물이 풀을 발효시켜 필요한 영양분을 얻고 살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소가 인간에게 소고기를 주는 산업동물로 전락하면서 더 적은 사료로 살을 더 많이 찌우는 게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그건 바로 ‘돈’과 직접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이죠. 결국 더 많은 양의 고기와 우유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소에게 건초와 곡물 대신 고단백질 육골분 사료 먹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사료로 만들어진 양이나 소들은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있는 ‘기립 불능(Downer)’ 동물들‘이었습니다.
당시 학자들은 광우병에 걸린 동물들이 대부분 1981~1982년 사이 만들어진 육골분 사료로 감염됐고, 대체로 4년 이상의 잠복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1988년 7월, 육골분 사료에 대한 공급 중단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그럼에도 광우병 감염 소는 계속 생겼습니다. 당시 공식적으로 확인된 광우는 2,185마리였고, 이때부터는 한 달에 거의 500마리씩 늘어 1989년에는 공식집계만 7,136마리에 이르렀습니다.
○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더 이상 ‘광우병’의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이 병이 ‘사람에게도 옮느냐’가 됐습니다. 1990년 2월, 언론에서는 BSE에 걸린 소의 뇌를 쥐에게 먹였을 때 전염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인간도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이 무서운 병에 걸릴지 모른다고 술렁거렸습니다.
1990년 5월, 애완고양이가 광우병 의심 증세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광우병 공포는 말 그대로 극에 달했습니다. 소고기 소비가 3분의 1로 줄었고, 학교식단에서는 고기반찬이 사라졌습니다. 영국 정부는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동물관리국장은 방송에 나와 광우병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국민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농업장관은 TV카메라 앞에서 소고기가 안전하다며 자신의 딸에게 햄버거를 먹여 주는 쇼맨십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광우병의 ‘미친’ 행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후 4년 동안 애완고양이 62마리가 더 죽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장관의 딸은 17년 뒤 자신의 친구가 광우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제야 영국 정부도 동물성 사료가 원인이었음을 인정했습니다. 국민들은 망연자실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광우병이 더 이상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992년 4월엔 독일에서, 같은 해 9월엔 덴마크에서도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확인됐습니다. 이 소들은 모두 지난 1988년 영국에서 수입한 소였습니다. 이 무서운 전염병이 드디어 유럽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 뒤 상황은 이미 뉴스나 언론을 통해 많이 나왔던 얘기라 간략히 요약하겠습니다. 2000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영국에서 88명, 프랑스에서 3명, 아일랜드에서 1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2001년엔 스페인과 일본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국산 소에 대해 전수 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돼 우리 정부는 미국산 소 수입을 금지했고, 다음해엔 캐나다에서도 광우병 소가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4월, 우리나라는 미국과 협상을 벌여 미국산 쇠고기를 연령 제한 없이 수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 협상단은 미국 협상단으로부터 ‘현재보다 강화된 동물사료 금지조치를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LA갈비처럼 뼈 있는 쇠고기까지 대폭 허용했습니다. (참고로 LA갈비의 LA는 갈비를 써는 방향이 뼈 방향대로 길게 써는 한국식과 달리, 통째로 갈비 측면(해부용어로 Lateral Axis)을 자른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입니다) 그 다음은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를 한동안 뜨겁게 달구었던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로까지 번졌습니다.
광우병의 원인 –프라이온(PRION)
이제 지금까지 여러 질병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스크레피’, ‘쿠루병’, ‘광우병(BSE)’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전염성밍크뇌증(TME)’. 하지만 이 질병들은 크게 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병원체’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병원체의 정체는 바로 '프라이온(PRION)‘ 이라는 단백질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밝혀졌던 병원체인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 ’기생충‘이 아니라는 사실에 의학계는 경악했습니다.
프라이온(PRION)이란 명칭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S.F.)의 스탠리 프루시너(Stanley Prusiner)교수가 만든 합성어로 단백질 ‘Protein’과 바이러스 입자를 뜻하는 ‘Virion’을 합친 단어입니다. 이제까지 질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등이 일으킨다고 알려졌었습니다. 이 병원체들은 모두 DNA나 RNA 같은 유전정보가 같고 자체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병원체에서 증식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의학용어로 ‘전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프라이온은 달랐습니다. 유전정보도 없고, 당연히 자체적으로 증식할 수 없는 ‘단백질’ 덩어리였습니다. 이는 너무 파격적인 주장이었기 때문에 학계는 프루시너 교수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80-90년대에 발생한 광우병과 인간광우병(vCJD) 환자가 발생했고, 그의 이론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스탠리 박사는 1997년 ‘프라이온’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실 프라이온(PrP)은 정상적인 세포의 표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성분입니다. 그런데 이 단백질이 특정 원인에 의해 세포 표면에 도달하기 전에 변형되면, 광우병을 일으키는 ‘변형 프라이온(PrPs)’이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프라이온은 원래 정상 세포에서 발견되는 단백질로 정상 뇌신경세포의 작용에 필요하지만, 유전자 돌연변이나 자외선, 물리화학적 파괴 등으로 이상이 생기면 세포 내 정상적인 프라이온까지 구조변형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결과 신경세포가 죽어버리는, 즉 ‘뇌세포 파괴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프라이온 변형이 소에게 발생하면 광우병(BSE), 양은 ‘스크래피’, 사슴은 ‘만성소모성질병(CWD)’, 사람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사람에게 생기는 CJD는 프라이온의 종류와 발병원인에 따라 다시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1) sCJD(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
CJD 가운데 가장 많은 경우를 차지합니다. 전체 발생 건수 가운데 약 80%가량이 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질병은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발병되었기보다는 주로 신경세포에 존재하는 프라이온이 '자연적으로' 구조가 변형된 경우입니다. 평균 60세에 걸려 대부분 7~8개월 이내에 숨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iCJD(인위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인위성, 말 그대로 자연발생이 아닌 사람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주로 외과 수술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최근 발생한 CJD 사망환자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는데요, 대부분이 CJD 환자를 치료한 수술도구로 다른 환자를 수술했거나 CJD 환자의 뇌막을 이식받은 경우 발병합니다.
3) fCJD(가족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
‘가족성’이라는 건 쉽게 말하면 선천적으로 CJD 발병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한마디로 태어나면서 유전적으로 이미 CJD에 취약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vCJD(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바로 문제의 광우병입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외부에서 유입된 프라이온과 같은 인자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vCJD로 사망한 사람을 분석해보면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나온 고기(특히 SRM)를 먹고, 평균 28세에 발병해 1년 뒤에 죽었습니다. 이 vCJD를 제외한 나머지 CJD는 광우병 소와 관련이 없다는 게 학계의 의견입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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