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벽 5시, 승합차 운전자가 왕복 2차로에서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운전자는 피해자를 사고 현장에서 끌고 와 갓길에 눕히더니 병원이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다시 자신의 차에 태웠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불러내 한동안 돌아다니다 근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 시각이 6시 50분, 사고를 낸 지 1시간 50분 만이었습니다. 피해자를 업고 병원에 들어간 아들은 뜻밖에도 "길에 쓰러진 남자가 있어서 발견해 내가 데리고 왔다"고 신고했습니다. 아마도 맞아서 쓰러져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뺑소니 사고를 선행으로?
운전자는 뺑소니 사고를 낸 뒤 어찌할지 몰라 가족과 모의한 끝에, 마치 쓰러져 있던 남자를 구한 선행을 한 것처럼 둔갑시키려 한 겁니다. 하지만 운전자의 얄팍한 술수는 금방 들통났습니다.
응급실에 환자를 신고하려면 여러가지 절차가 필요합니다. 병원에서는 피해자를 접수하고 신원 파악 등을 위해 경찰에 연락을 했는데, 피해자의 몸 상태를 본 의사도 단순히 폭행을 당한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갈비뼈, 다리가 골절돼 있었고 머리 쪽의 손상이 심했던 겁니다. 병원에 도착한 경찰이 아들에게 상세하게,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피해자를 어디서 발견했는지, 몇시에 발견했는지, 그리고 그 시간에 피해자의 행적과 주변인들의 진술...
경찰은 몇시간 동안 추궁 끝에 귀가하려던 피해자가 그 시간에 병원 주변에 갔을 리 없다는 사실과 아들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의 뺑소니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피해자는 21살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제가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사고를 당한 지 사흘 째 피해자가 숨졌기 때문입니다. 사고는 12월 31일 새벽에 났고, 그날 저녁엔 가족들과 저녁 식사도 예정돼 있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할 기대로 가득 차 있었을 피해자는 병원에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도, 제대로 된 응급처치라도 받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겁니다.
피해자의 빈소에 찾아가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눈만 떴더라면 모든 걸 용서하려고 했다'는 아버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시더군요. 피해자가 뇌사 상태에 빠지자 장기기증까지 생각했던 유족들...그의 빈자리에 가족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음주운전을 숨기려고...
사고를 숨기려 했던 운전자는 결국 반나절 만에 경찰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뒤늦게 뺑소니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경찰은 그 길로 운전자를 데리고 범행 장소로 가서 현장 검증을 했지만 운전자는 사고 장소 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운전자의 상태가 이상했던 겁니다.
경찰은 운전자의 혈중 알콜농도를 검사했습니다. 0.148%, 음주 운전을 했다면 면허 취소 수준이었습니다. 이를 측정한 시각은 낮 12시 29분, 사고를 낸 지 7시간 반 정도 지난 때였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운전자는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뺑소니 사고를 낸 이후 소주를 사서 마셨는데, 그 때문에 혈중 알콜농도가 높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운전자가 실제로 소주를 사 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운전자가 소주를 샀다는 병원 주변 편의점의 CCTV를 확인했습니다. 오전 7시 25분, 운전자는 소주를 사는 순간에도 비틀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소주는 1병을 사 간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운전자의 이런 꼼수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사실은 밝혀졌습니다. 경찰이 운전자의 혈중 알콜농도를 역추적해 낸 겁니다. 이른바 '위드마크 공식', 술을 마신 양과 체내 흡수율로 혈중 알콜농도를 계산해 내는 수사 기법 때문입니다.
우선 낮 12시 29분, 운전자의 혈중 알콜농도는 0.148%입니다. 소주 1병을 마셨다면, 마신 이후부터 측정 시간까지는 술이 깨면서 혈중 알콜농도가 떨어집니다. 술이 깨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통상 90분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따라서 술을 마신 직후인 7시 40분에는 운전자의 혈중알콜농도가 이보다 더 높았겠죠. 이 수치는 술이 깨는 시간과 알콜농도 감소 계수에 따라 결정됩니다.
술이 깬 시간 : 199분(289분 - 90분)
혈중 알콜농도 감소 계수 최대치 0.08%
0.148 + (0.08*199/60) = 0.174%
운전자의 경우는 술을 마신 이후부터 측정 시간까지 0.026%가 줄었기 때문에 술을 마신 직후인 7시 40분에는 0.174%로 추정됩니다. 소주 1병을 마신 이후가 0.174%라면, 술을 마시기 전에는 소주 1병에 따른 만큼 혈중 알콜농도가 적겠죠. 혈중 알콜농도는 음주량과 알콜 농도, 체중 등의 요인에 따라 결정됩니다.
혈중알콜농도 = 알콜의 양(음주량*술의 농도*알콜계수 0.8) / 체내 흡수율(체중*성별계수)
운전자의 체중과 소주 1병 19.5도, 360ml 등의 수치를 대입해 계산하면 알콜농도는 0.071%로 계산됩니다. 따라서,
0.174 - 0.071 = 0.148%
운전자는 소주 1병을 마시기 전에도 이미 혈중알콜농도가 0.148%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이런 계산 결과를 토대로 운전자가 음주 운전을 하고도 이를 숨기기 위해 소주 1병을 사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일부러 소주를 사가는 장면을 편의점 CCTV에 노출시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운전자는 음주운전 전과가 8번, 음주 운전으로 3번 적발되면 2년 동안 면허를 재취득할 수 없다는 삼진 아웃제도 있기 때문에 면허를 다시 따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운전자는 지난해 말 면허를 다시 땄지만 또다시 사고를 냈고, 어떻게든 음주 사실을 숨기려 하다 이같은 거짓말을 계속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음주 운전은 드러났고, 여기에 뺑소니 전력까지 겹치면 재취득 결격 기간은 더 늘겠죠. 그보다 편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운전자는, 앞으로 운전은 커녕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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