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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GO! HONG KONG!' 중국 원정출산

[취재파일]'GO! HONG KONG!' 중국 원정출산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행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국 원정 출산'일 겁니다. 비용만  몇 만 달러, 혹은 수십만 달러씩하는 고가의 원정출산을 통해 '있는 집'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미국 시민권'이라는 값비싼 선물을 안겨 주곤 했습니다. 내 자식들이 좀 더 편안하고 수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만들어 주겠다는 부모들의 마음이야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싶어도 못하는 '없는 집' 엄마 아빠들의 상실감은 또 얼마나 컸습니까?

'있는 자'들의 이런 천박하고 비뚤어진 출산 행태가 요즘 돈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신흥 중국 부자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있는 집'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곳은 다름아닌 '홍콩'입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우선, 홍콩에서 출산하면 자동으로 '홍콩영주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중국 본토인들이 선망하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여권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품에서 벗어난 지 벌써 15년이나 됐지만 홍콩의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자유롭고 서구적인데다 12년 무상 교육을 비롯한 각종 혜택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특히나 홍콩대학이나 홍콩중문대 같은 홍콩소재 대학들이 베이징대나 칭화대 같은 본토의 명문대를 뛰어 넘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본토의 학부모들은 자식을 홍콩으로 보내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홍콩이 금융중심지로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몰려 있어 취업에도 유리합니다.

본토의 부유층 부모들이 홍콩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홍콩에서 자녀를 출산할 경우 본토에서 시행중인 엄격한 '한 자녀 정책'을 합법적으로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홍콩에서 아이를 낳으면 예외로 인정되기 때문에 본토에서 또 다른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홍콩 원정 출산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본토 출신 여성이 홍콩에서 낳은 아이는 4천 1백명에 그쳤지만 2010년에는 4만 6백명으로 6년 만에 10배로 늘었습니다. 하루 평균 1백10명으로 이는 2010년 홍콩에서 태어난 전체 신생아 수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본토 임산부들이 몰리다 보니 정작 홍콩 현지인 임산부들은 병원조차 구해 예약을 위해 웃 돈까지 건네줘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중국 판 원정출산'도 사회문제로 비화됐습니다.   

보다 못한 홍콩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출산 7개월 전에 홍콩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분만 예약을 한 임신부에 대해서만 홍콩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허가하는 한편, 홍콩에서 출산할 수 있는 중국인 임산부의 수를 한 해 3만4천4백명으로 제한하는 '출산 쿼터제'까지 내놨습니다.

하지만 정책에는 항상 이를 뛰어 넘는 기상천외한 대책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원정 출산 소개업체들은 홍콩에 인접한 광둥성에서 홍콩 번호판 차량에 만삭의 임산부를 태워 홍콩 내로 들여 보낸 뒤, 무턱대고 병원 응급실로 직행하도록 했습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입원을 거부할 수 없는 헛점을 노린 겁니다. 이런 '막무가내'형 불법 원정 임산부들도 지난해에만 1천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도널드 창 홍콩 행정장관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만나 홍콩으로 본토 임산부를 불법 송출하는 브로커 조직을 단속해 줄 것을 공식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법 원정 출산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나 올해는 중국인들이 행운의 해로 여기는 '흑룡띠 해'이기 때문에 몇 년전 우리나라의 '황금돼지해'에 맞먹는 출산 광풍이 일어날 게 불보듯 뻔해 벌써부터 홍콩 원정 출산으로 인한 부작용이 극에 달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오는 3월 행정장관 선거를 앞둔 홍콩 정치권에서도 '원정 출산'이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당선이 유력한 렁춘잉 후보는 홍콩인과 결혼하지 않은 중국인 임신부가 홍콩의 공립병원에서 출산할 수 없도록 금지시키겠다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렁의 공약에 따르면 홍콩인 남편을 둔 임산부라도 역시 할당제에 적용을 받게 됩니다. 원정 출산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겁니다.

"GO! HONG KONG!"을 외치던 중국 부유층 임산부들의 홍콩 러시가 앞으로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이자 최근에는 대안으로 미국행 티켓을 준비하는 부류들이 속속 늘고 있다고 합니다. 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이 아이러니한 풍속도가 21세기 지구촌에서 이데올로기는 이미 죽은 지 오래임을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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