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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사님이 전화한 곳은 '119 상황실' 입니다.

[취재파일] 지사님이 전화한 곳은 '119 상황실' 입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전화가 지난 한주 뜨거운 화제였습니다. 김 지사의 행동을 비난하는 각종 패러디물이 만들어졌고, 징계를 받은 소방관이 해명글을 올린 날, 경기도청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 일파만파 커지게 된 이유는, 인터넷에 통화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문제가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취재를 시작했을 당시 저는 통화내용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경기도와 소방본부 쪽에 녹취록 공개를 요청했지만, 절대 '불가'하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경기소방본부가 통화내용을 일선 소방서의 친절교육 자료로 활용했기 떄문에, 일선 서에도 요청했지만 녹취록을 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왜 모든 사람들이 녹취록을 감추는 걸까. 처음 보도가 나왔을 때, 이 일은 소방관들을 문책성 인사조치했다는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때문에 통화내용 자체는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후 내내, 취재한 내용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다뤄야 하나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통화 내용을 직접 들어보기 전에는 잘잘못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늦게 우연히 한 블로그에서 김 지사와 소방관들의 통화내용이 녹음된 파일을 발견했습니다.

통화내용을 들어본 뒤,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 왜 경기도와 소방본부가 이 녹취록을 감추려 했는지를.

녹취록을 들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생각은 '김 지사의 관등성명 요구가 과했다'일 겁니다. 3분 남짓한 통화에서 김 지사는 두 소방관에게 모두 8차례에 걸쳐 이름을 물었습니다. 김 지사는 이름을 묻고, 소방관은 내용을 묻고, 이러다가 통화가 끝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도 없이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소방서 상황실은 정신없이 바쁩니다. 저도 야근을 하다보면 수시로 소방서에 전화를 하게 되는데, 통화 중에도 옆에서 쉴새 없이 구급과 구조를 지시하는 무전이 들립니다. 통화 중에 사건사고가 생기면 상대가 누구든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실 근무자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소방관 업무의 핵심은 기자 전화응대가 아니라, 긴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기 떄문이죠.

이 일이 불거지고 며칠 뒤 김 지사가 남양주 소방서를 방문했습니다. 소방서를 둘러보다가 상황실에 들어갔는데, 그때 마침 상황실로 신고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신고 내용은 '개가 개를 물었는데 해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황당하죠. 상황실에는 이런 전화도 걸려옵니다. 이런 황당한 전화에 상황실 근무자는 '가까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응대했습니다. 동물 민원도 해결해줘야할 만큼 이렇게 소방서 상황실은 바쁜 곳입니다.

보도가 나간 이후, 김 지사가 지나쳤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소방관들의 응대가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두 소방관이 이름과 직위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데, 복무규정을 위반한 점은 분명히 지적돼야 합니다. 그러나, 견책이나 경고 차원에서 끝날 수 있는 사안을 인사조치까지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쳤습니다.

                   


두 소방관은 다시 남양주소방서로 복귀했습니다. 잘못된 인사조치를 되돌렸다는 점에서 참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두 소방관의 마음은 절대 편치 않을 겁니다. 보도가 나간 첫 날, 두 소방관에게 전화를 했을 때, 두 분 모두 이 일이 알려지는 것을 진심으로 원치 않았고, 말을 아꼈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이 일이 알려져 소방본부 총 책임자이자 인사권자인 도지사의 이미지에 흠집이 났는데... 두 소방관의 마음이 많이 불편할 겁니다.

김 지사는 두 소방관이 인사조치된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를 파악해보라고 지시했을 뿐, 문책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랬다면 책임자의 뜻을 거스르고 제멋대로 문책한 소방본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과잉 충성죄를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지사는 자신이 119 홍보대사라고 말합니다. 명절도 휴일도 없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애쓰는 소방관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건데, 그 마음 앞으로는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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