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가 되면 미래 전망이 쏟아집니다. 약간 유행이 있는 듯한데 2012년에 대한 전망은 '회색 빛'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과거 자료를 찾아보니 2011년에 대해선 미국의 견조한 경기회복을 바탕으로한 '장미빛' 전망이 많았더군요. 이를 바탕으로 주가지수도 높게 전망했는데 대부분 틀렸습니다.
2011년 초에 저는 중국발 물가상승을 가장 큰 화두로 꼽으며 기사와 글을 썼습니다. 2011년 연 평균 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 목표치 4%를 사실상 넘었습니다. 그것도 중간에 한국은행이 3년 평균 3%였던 목표치를 4%로 조정하고, 정부는 연말 물가지수 개편까지 했는데도 개편 지수로는 4%, 개편 전 지수로는 4.4%를 기록했습니다. 물가관리에 실패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과 2011년 금리인상 시기를 놓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며 아직 그 여파는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2012년 한국 경제에는 어떤 암초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크게 보면 저성장, 불안한 중국, 심각한 유럽, 지지부진한 미국,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란과 북한, 그리고 정책수단 미비와 50개국의 선거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역의존도가 3분기 기준 97.1%로 100%를 육박하는 한국이 요즘같은 글로벌시대에 세계 경제에서 벌어지는 충격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상황을 연계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먼저 저성장,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과 심지어 정부까지 2012년 성장률 전망치를 3%대로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저성장 기조는 단기간에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로 큰 선거를 앞두면 후보자나 정당들은 구호처럼 높은 성장률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현실을 외면하는 말 그대로 '구호'일 뿐입니다. 이미 '747'로 대표되는 7% 성장의 허상을 보지 않았습니까? 이런 행태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벗어날 수 없는 유혹인데, 나라 빚을 엄청 늘리거나 성장을 하지 않고선 우리 여건에서 저성장은 불가피한 현실입니다.
둘째,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불안합니다. IMF 등이 중국의 2012년 성장률을 7%대로 전망하고 있는데 중국은 농촌에서 도시로 밀려드는 2천만 명 가까운 농민공 일자리를 유지시켜 사회불안을 달래려면 8% 성장은 해야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과잉투자 방식으로는 한계에 이른 실정입니다. 이미 중국은 고정투자가 GDP의 50%를 차지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상황이며 70개 도시 가운데 49개 도시에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며 거품이 빠지는 중입니다. 중국 역시 수출 뿐 아니라 부동산 경기를 띄우면서 성장률을 높여 온 측면이 있는데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개발업자 등 주변 산업 일자리에도 타격을 주게 됩니다.
다만 2012년 정권 이양기를 맞는 중국 지도부가 선제적인 조치를 통해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물가와 부동산 문제는 잡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많습니다. 이런 예상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중국의 경착륙와 연착륙에 대한 견해는 달라집니다. 2011년 전망의 성패를 좌우한 핵심이 미국이었다면 2012년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입니다. 대중 수출 비중이 25%에 육박하는 한국 경제에는 대단히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수출의 38% 정도를 차지하는 미국와 유럽의 경기부진은 당연히 한국 경제의 문제가 될 것이고, 여기에 중국 내수마저 흔들리면 예상보다 충격이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변수는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안 좋다는 겁니다. 경기침체는 불가피하고 유로존이 붕괴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남아있습니다. 나라 빚은 많은데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은 떨어지고 여기에 허리 띠까지 졸라매야하니 답이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상반기가 문제입니다. 2012년 2~4월 사이에 유로존 3, 4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 스페인의 국채 만기가 돌아오는 액수가 상당합니다. 이탈리아는 채무액의 절반이나 됩니다. 이탈리아 채무의 45%를 프랑스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으니 이탈리아가 돈 못 갚으면 프랑스 은행을 거쳐 유럽 ⇒ 미국 ⇒ 아시아 금융시장을 흔들 겁니다. 유럽중앙은행과 유로존 지도부가 장기적 계획은 내놓았지만 단기적으로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돈을 지원해 주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유럽은 2012년에도 두고두고 골치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해선 해외 석학들의 견해가 엇갈립니다.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미국 주택임대시장이 살아나면서 적어도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을 합니다. 하지만 9%대 높은 실업률을 해결할 방법이 안 보이고, 정부가 돈을 잔뜩 풀어서 그나마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반대하면서 '대담한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정부지출은 줄이고 부자와 대기업 세금만 깎아주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실패가 검증된 미신'을 믿고 있는 공화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미국의 경기회복이 더욱 오래 지지부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란과 북한은 2012년 경제의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변수가 강력한 충격을 주는 현상)이 될 것입니다. 이란의 핵무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해 이란이 중동 원유 수출의 핵심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원유 등 상품시장은 물론 세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는 폭탄이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 김정일 사후 북한을 장악한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지만 김정은의 북한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변수입니다. 이란과 북한 모두 핵무기를 보유했으면서 예측이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012년에는 한국, 미국,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50개 국가에서 선거가 있습니다. 권력이 바뀌는 시기에는 인기없는 정책은 필요하더라도 쓰지 않습니다. 국제적으로 공조하면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자기 나라에게 유리한 정책만 신경씁니다. 환율전쟁, 보호무역 강화 같은 국제적 갈등 요인이 부각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주요 국가가 일사분란하게 의사결정을 이루면서 공동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대외의존도가 높고 외환시장이 개방된 한국은 이렇게 변수가 많은 2012년에는 외환시장 안정에 신경써야 합니다. 비록 지금 외환보유고가 3천억 달러가 넘고 단기외채 비중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낮아졌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여건은 아닙니다.
내수시장을 짖누르고 있는 부동산과 가계부채는 사실 구조조정과 연착륙 정책이 필요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정부 여당이 과감한 정책을 쓸 리 없고 오히려 부동산은 문제를 키우는 미봉책을 꺼내들 가능성이 큽니다. 누가 되든 다음 정권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외환위기 여파로 DJ 정부가 힘들었고 카드대란 여파로 노무현 정부가 초기 힘들었던 과정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2012년 한국 경제는 정치적으로 격변을 겪는 가운데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시장을 찾으면서 내수 시장을 늘리고, 물가도 안정시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더우기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 된 양극화 문제에 관해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사회적 해법을 내놓아야 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습니다.
쓰고나서 보니 연초에 덕담 위주로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데 재만 뿌린 것 같긴 합니다. 1년 뒤 이 글을 보면서 "다 틀렸군" 하며 웃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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