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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인들의 '고래사랑', 그리고 '고래사냥'

[취재파일] 일본인들의 '고래사랑', 그리고 '고래사냥'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1.12.30 11:18 수정 2011.12.30 14: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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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바르도 였던가요? 88올림픽을 앞두고 이 프랑스 여배우가 한국을 개고기 먹는 야만국으로 매도하며 개고기 금지 안 하면 올림픽 보이콧 운동을 하겠다며 난리를 피우자 우리 정부가 길거리 보신탕집들을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골목 안으로 내쫓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식용 개고기' 때문에 서구 언론과 동물보호주의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듯이 일본도 별난 식 문화로 국제사회로부터 끊임없는 비난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고래고기' 사랑 말입니다.

섬나라 일본은 명실공히 세계에서 고래고기를 가장 많이 먹어치우는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제1의 포경 국가입니다. 포경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하다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표피의 기름까지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부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만 따지자면 부가가치가 엄청난 셈입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쇠고기보다 고래고기를 더 좋아해 도쿄 같은 대도시 식당가를 가봐도 고래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고래고기를 활용한 음식도 다양해서 활어회는 기본이고, 샤브샤브에 튀김, 덮밥, 심지어는 점심 세트 메뉴까지 인기리에 팔리고 있습니다. 슈퍼마켓 진열대에도 고래고기 통조림이 한 자리 떡 하니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와카야마현에는 '타이지'라는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 있습니다. 리아스식 해안에 자리한 이 마을은 일본 재래식 포경의 발상지로 유명한데 예전처럼 큰 고래 잡기가 힘들어진 요즘엔 야생 돌고래를 잡아 가두리 방식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바다의 삼 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 쌓인 그 곳에 철조망 설치하고 외부인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한 채 은밀히 작살을 사용해 돌고래를 학살합니다. 용도는 물론 식용입니다. 타이지에서 무분별한 포획 활동으로 죽어간 야생 돌고래는 연 2만 마리가 넘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고래고기는 타이지 마을 학교 급식에도 쓰이고 전 일본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5백 마리 밖에 남지 않은 긴수염고래를 비롯해 고래들이 개체 수 감소로 멸종 위기에 처하자 국제사회는 국제포경위원회(IWC)를 앞세워 지난 1986년 상업 포경을 금지하는 국제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의 주된 타겟은 물론 포경 왕국 일본이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본은 그 뒤로 포경을 잠시 중단하는 듯 했습니다. 고래를 못 잡으면서 고래고기는 귀해졌고 그럴수록 고래고기는 최고급 요리로 더욱 비싼 값에 팔리게 됐습니다. 꽤 많은 수의 포경 어민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열심히 포경 재개를 위한 로비를 펼쳤습니다.

20년을 별러 오던 일본 정부가 2005년 드디어 포경 재개를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상업적 포경을 허용해 주지 않으면 IWC를 탈퇴하겠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자국으로 부터 200해리 수역내에서는 포경을 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급기야 농림수산상까지 나서 올 겨울부터 고래 최대 서식지인 남극해에서도 포경을 강행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이 포경 재개 허용을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 포경 금지 기간 동안 개체수가 늘어난 고래들이 너무 많은 물고기들을 먹어 치운다는 겁니다. 고래만 보호하다가 정작 다른 어종의 어획량이 줄어드는 상황이 됐으니 적당한 수가 유지되도록 고래를 잡아야 마땅하다는 얘기입니다. 둘째, 자국내에서 진행중인 고래 관련 연구를 위해 더 많은 양의 고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현재 일본은 한 해 5마리의 향유고래, 40마리의 보리고래, 10마리의 큰고래, 50마리의 브라이드 고래를 잡고 있고 밍크고래 포획량은 5백 마리나 됩니다. 그런데 이 양으로는 연구하기에 부족하니 포획량을 두 배로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조사 포경'이라는 건데 모르긴 몰라도 잡은 고래 대부분은 식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주장 모두 어불성설이자 억지 같은데, 일본이 고래사냥에 별 관심이 없는 약소국들을 상대로 워낙 적극적인 로비를 펼치다보니 많은 나라들이 포경 허용 찬성으로 조금씩 입장을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와 동물보호단체들은 일관되게 일본의 포경 재개을 맹 비난하고 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정부는 일본과의 우호관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포경 재개에 대해 비난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해양동물보호단체인 '시 셰퍼드'는 벌써 몇 년째 일본 포경선을 추적하며 고래잡이를 방해해 오고 있습니다. 일본 포경선과 '시 셰퍼드' 감시선 간에는 살벌한 해상전쟁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에는 포경선이 쳐 놓은 그물을 시 셰퍼드 대원들이 찢자 물대포로 쏴 부상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시 셰퍼드 감시선 선장을 일본으로 압송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국외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남극해 포경 재개 선언 이후 '시 셰퍼드' 측은 "일본이 고래잡이하는 해역에 선박 3척을 보낼 것"이라며 "일본 포경선단이 작업을 계속하려면 우리 대원을 죽여야 할지 모른다"고 결연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일본 정부도 이에 굴하지 않고, 포경선에 경비정을 딸려 보내 방해세력들로부터 자국 선박을 지키겠다고 엄포를 놔 자칫하면 해상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인들의 유별난 '고래사랑'("사실은, 고래고기 사냥")에서 비롯된 '고래사냥'이 정말로 국제 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때 꽤나 시끄럽던 우리 개고기 문화가 '개고기 금지 협약' 같은 국제 사회의 이슈로까지 불거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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