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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관현맹인(管絃盲人)의 부활

100년 만의 부활

장애인들은 아무래도 일반인들보다 여러 면에서 '기회'를 얻기가 힘듭니다. 특히, 신체적인 제약 때문에 '직업 선택의 기회'가 제한되는 게 가장 문제일테고요, 그 기본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니 '예술 향유나 취미의 기회'도 확실히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최근들어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예술'과 '취미'의 '기회' 자체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도우미의 설명과 주변 소리와 빛의 느낌을 토대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연극으로 무대에 올렸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지난 2007년 사회부에 있을 때 시각장애인 사진전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293599)

청각장애인 가운데에서는 '미스 월드 코리아'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들과 미모와 실력을 겨뤄서 당당히 5위에 오른 김혜원 양이 그 주인공입니다. ( 김혜원 양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81853)

하지만, 아무래도 장애인들이 '예술에 대한 관심'과 '취미'를 '직업'으로 연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스티비 원더, 전제덕 같은 걸출한 장애인 아티스트가 있기는 하지만, 배움의 기회도, 직업의 기회도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맹학교나 농학교에서 치료와 병행한 음악 교육을 받는 게 거의 전부일 뿐, 전공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시각장애인 정식 단원들로 구성된 전통음악 예술단이 정식 창단 공연을 가졌습니다. 이름하야 '관현맹인'입니다. 전통음악을 전공한 시각장애인들을 정식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뒤 예술단을 만든 것입니다.

사실 전통음악을 전공한 시각장애인들은 전국에 10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회만 주려면 이 전공자들을 다 단원으로 받아 무대에 세워도 되겠지만, '관현맹인'은 일반 악단처럼 진짜 '실력자'들만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인원수도 부족합니다. 전통음악을 제대로 연주하는 연주단이라면, 단원이 적어도 10명은 넘어야 구색이 맞지만, 소위 '깜냥'도 안 되는데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뽑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원들은 보통 한 사람이 서너 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만 합니다.

악보도 볼 수 없고, 다른 연주자의 모습도 볼 수 없으니, 느낌과 감을 확실히 익혀야 하기 때문에 연습시간은 일반인들의 대여섯 배까지 더 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력도 열정도 일반 연주자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관현맹인’은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한 장애인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정식 악단입니다. 한 달에 2백만 원 정도 되는 월급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고, 4대 보험에도 가입이 됩니다. 장애인으로서도, 또 예술인으로서도 좋은 조건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관현맹인' 제도는 지금 처음 생긴 게 아닙니다. 그 출발점은 조선시대 세종임금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관현맹인'은 궁중의 무용과 연주를 담당하는 부처인 '장악원'에 소속된 정식 ‘악공’이었습니다. 다른 일반적인 악공처럼 관직과 녹봉을 받기도 했죠. 조선왕조실록에도 관련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요, 특히 세종실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악사는 앞을 볼 수 없어도 소리를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선시대 3대 악성으로 알려진 박연은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생활이 일반 악공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관현맹인 악공들의 처우 개선에도 적극 앞장서서 세종에게 건의했다고도 하네요.

관현맹인들은 궁중의 잔치와 행사에 참여해 악기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특히, 궁중의 여인들의 잔치인 내연에는 성인 남성 연주자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관현맹인 악공들이 참석했다고 하네요. 이 관현맹인들은 녹색 비단으로 만든 두건을 쓰고, 압두록색이라고 하는 짙은 녹색 무명 단령을 입고, 붉은 가죽띠를 허리에 차고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이 차림은 다른 악공들의 차림과 똑같은 것입니다.

                       


조선시대 관현맹인 중에는 널리 이름을 떨친 연주가들도 있었습니다. 세종 당시 현금 연주자 이반, 가야금 연주자 김복산과 정범은 연주 솜씨가 훌륭해서 전국적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특히 김복산은 성종 때 서반 9품 체아직이라는 벼슬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장애 여부를 불문하고, 당시에도 실력이 있다면 인정을 해줬던 것입니다.



이런 관현맹인 제도는 고종 때까지 지속되다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 조선왕조가 서서히 무너져 가면서 자연히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러던 것이 거의 100여 년 만에 부활한 것이죠.

일단 현대 관현맹인은 '시각장애인'으로만 구성된 전통음악단으로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을 했습니다. 벌써 내년 10여 개의 국내외 연주가 예약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이죠. 단원들은 이런 뜨거운 관심이 고맙기도 하지만 일면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첫째, '장애인 연주자'라는 이유로 동정심의 박수는 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주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지요.

둘째, '관현맹인' 제도가 '반짝 선심성 제도'가 아니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연습에 연습을 반복하며 실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 후배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맹학교에 찾아가 국악기 강습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강습을 받은 시각장애인만도 벌써 1천1백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제도가 이제야 부활한다는 건 조금은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단원들의 바람처럼 관현맹인이 여느 오케스트라처럼 오랜 역사와 실력을 갖춘 악단으로 성장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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