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어제(19일) 모습은? 20일 아침 (TV공장 용어로) 총 맞았던 아이템 제목입니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가 지난 17일, 그러니까 김 위원장이 숨진 그날, 평양을 방문했는데, 20일 돌아오는 방북단을 인터뷰해 8뉴스에 방송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방북단이 17일 이후 평양 시내를 재주껏 촬영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공항에 가려던 찰나, 통일부 출입기자로부터 입국이 늦어질 것 같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평양에서 2시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베이징 발 환승 비행기를 못 탔다는 이유. 자정이 넘어서야 귀국 가능하다 했습니다. 업계 용어로, 킬(Kill)입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한 시민단체 관계자와 커피숍에서 수다를 떠는데, 다른 총이 날아왔습니다. 숨진 김정일 위원장의 첫 번째 부인인 성혜림. 그 성혜림의 오빠가 서울에 사는데, 그 분을 인터뷰해, 내가 본 김정일, 뭐 이런 제목을 달아 방송하자는 얘기였습니다. 79살 성일기 씨. 집 전화번호가 문자로 틱 날아옵니다. 휴대전화로 성 씨에 대한 사전 정보를 확인하고 전화를 거니, 대뜸, 자신은 앵무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똑같은 얘기를 이 기자, 김 기자, 박 기자한테 떠들기 싫다는 얘기입니다. 앵무새 되셔도 괜찮다고, 이기적인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주소를 받았고, 직접 차를 몰고, 은평구 갈현동으로 쐈습니다.
MBC 차량이 집 근처에 보입니다. 먼저 와서 하고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영상취재기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 집 밖에서 손을 비비며 기다립니다. 그때, 검은 가죽점퍼를 입은 두 남자가, 성 씨가 사는 빌라 계단을 걸어 올라갑니다. 촉이 움직였습니다. 국정원이군. 김정일 사망한 걸 이틀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더니, 김정일 처남 발언 보도되니까, 이제 나타난 건가? 제발 얼굴에 국정원이라고 써놓고 다니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느낍니다. 누가 봐도, 국정원. 너무 티가 나서, 창피했습니다.
영상취재기자 도착. 카메라 들고, 벨을 눌렀습니다. 따님이 나옵니다. 안에서는 채널A(종편)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따님은 당혹스러워 했습니다. 아버님이 막 얘기하시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1997년 이한영 암살을 얘기했습니다. 이한영은 성일기 씨 여동생인 성혜랑의 아들, 김정일 처조카입니다. 아까 얼굴에 국정원이라고 써놓은 양반들이, 제가 카메라를 기다리는 사이에, 입단속을 단단히 하고 간 것입니다. 국정원은 빌라 주변을 티 나게 돌아다니며, 취재팀 동향을 살폈습니다. 국정원이 아직 지키고 있다고, 따님은 걱정했습니다.
일단 물러납니다. 집 밖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8뉴스에 리포트가 잡힌 이상, 이 녀석이 kill-숨질 때까지는, 현장 기자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매번 미션. 어서 오십시오, 두 팔 벌리고 환대하는 취재원은 거의 없습니다. 이럴 경우 시간을 역산합니다. 8뉴스니까, 인터뷰를 벼랑 끝으로 해도, 오후 5시 반까지는 마쳐야 합니다. 집 밖에서 손을 부비며, 5시에는 벨을 한 번 더 눌러야겠다고 계산합니다. 카메라를 제 차로 옮기고, SBS 로고가 박힌 취재차량은 큰길로 내려 보내는, 마치 철수하는 듯 연출하는, 얄팍한 눈속임도 구사해봅니다. 때마침 등장하는 지구대 경찰. 보안계 형사도 나타납니다. 제대로 꼬인다는 필이 꽂힙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30분 앞선 4시 반, 다시 벨을 누릅니다. 최대한 손이 시린 듯 비벼봅니다. 저기, 커피 한 잔만 주세요.
성일기 씨의 따님, 즉 김정일 위원장 처남의 따님, 다시 말해 김 위원장의 먼 친척께서는, 감사하게도,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기자도 오고 싶어서 왔겠느냐면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말씀도 하십니다. 늘 그렇듯, 약속 드렸던 인터뷰 시간 10분은 15분이 되고, 20분이 되어갑니다. KBS 취재진이 그 와중에 들어와, 인터뷰 중인 어르신 앞에 무선 마이크를 슬쩍 숟가락 올립니다. 취재진끼리 잘 하지 않는 행동, 급하긴 급했나 봅니다. 오후 5시가 임박해, 인터뷰가 되느냐 안 되느냐, 궁금해 하는 데스크에게 전화합니다. 간단히 땄어요, 바로 회사 들어갑니다~.
직접 운전대 잡자니 후회막급. 1분 1초 싸움에서는, 운전=낭비입니다. 회사 차량과 어딘가에서, 적절히 합류하는 것이 좋다는 걸 알지만, 늘 뜻대로 안 됩니다. 기사는 안 썼고, 마음은 급하고, 깜빡이도 안 켜고, 곡예운전만 시도하고, 뒤에서는 빵빵!! 평소 맹비난하던 운전 스타일, 그대로 실천해봅니다. 마음은 회사, 몸은 서울 한복판. 눈앞에 길게, 아주 길게 늘어서 있는 시뻘건 브레이크등. 취재수첩 꺼내, 신호 대기를 틈타, 악필로 기사를 갈겨쓰기 시작합니다. 거의 막장입니다. 운전 중 딴짓은 위험하다고 그렇게 방송 해대면서, 딴짓 최고봉인 글을 쓰다니요.
차는 멈춰 있고, 멈춰 있고, 50cm 전진해, 다시 들어오는 후미등. 오후 5시 반. 차가 계속 기어가면, 물리적으로 방송할 수 있느냐 없느냐, 판단해야 할 시간이 닥쳤습니다. 서울 은평구 쪽에는 촬영 화면을 송출할 곳도 없습니다. 휴대용 마이크? 없습니다. 노트북으로 음성 전송을 못 합니다. 이러면, 입을 빌려야 합니다. 수첩에 갈긴 기사 뼈대를 전화로 떠들어주고, 다른 취재기자가 살을 붙여 방송하는 식입니다. 머리는 홀로 과속해, 수첩을 보니, 재주껏 9문장이나, 인터뷰를 3개나 넣어 구성했습니다. 차가 정말 얼마나 막혔으면;; 구원의 손길은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데스크의 전화.
어, 고생했는데~ 빠졌다~
오후 2시에 생명을 얻었다가, 오후 5시에 사망한 뉴스. 3시간의 단명. 오후 2시, 김 위원장 처남, 성일기 씨의 발언은 어떤 점에서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핏줄이어서? 김정일 처남이란 얘기에 깜짝 놀라서? 오후 5시, 그의 발언은 왜 8뉴스에서 빠졌는지. 알고 보니, 1950년 이후로 남한에서만 살아서? 김 위원장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아서? 암살된 이한영 씨의 전철을 밟을까봐? 아리송합니다. 4시간 남짓, 도심 한복판에 갇혀, 똥줄 한 번 타보니까, 정말 사회부 오긴 왔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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