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김정일은 치밀한 대외 전략가였습니다. 우리와 남북 회담을 하며 화해 국면을 조성하면서도 뒤로는
핵실험과 군사도발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권영인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2000년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다시 한 번 김정일 위원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정일 위원장 : 인민들한테 그젯밤 코스를 (알려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시면 어떤 코스로
백화원 영빈관까지 오신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남북 통일을 위한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금강산 관광등 남북 화해 시대가 열리는 듯 했습니다.
노무현 정권과는 개성공단을 가속화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김 위원장께서 직접 나와서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정일 : 대통령께서 오셨는데 내가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치고 있을 필요가 없죠.]
그러나 김정일은 이중성이 강한 전략가였습니다.
2002년 핵 개발 재개를 공식 선언하고, 2006년에는 핵 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벼랑끝 외교전술, 이른바 살라미 전술로 김정일은 미국과 남한으로부터 기름, 식량, 전력 지원 등을 이끌어냈습니다.
DJ 정부 시절에서 조차 두 차례 서해 교전을 일으킬 정도로 남한에 대한 직접 공격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켰습니다.
미국과 우리정부로부터 경제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양동전략이었습니다.
벼랑끝 전술로 고비고비 마다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미국과 남한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온 전략가를 자처했지만 37년 통치로 북한 주민에게 남긴 건 배고픔과 고립에 불과합니다.
(영상편집 : 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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