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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의 '디도스 결론 번복'…그 실체는?

세번 바뀐 경찰의 결론

[취재파일] 경찰의 '디도스 결론 번복'…그 실체는?

10.26 재보선 당일 벌어진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운전기사였던 공모 씨가 공격을 주도했다는 경찰의 발표는 12월 2일에 있었습니다.

며칠 뒤 한 여당 의원은 사석에서, 이 사건이 '차떼기'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버금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집권 여당은 이미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경찰도 후폭풍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희대의 사건 수사를 맡아 여당 의원 비서를 구속시키는 개가를 올리고도 은폐, 축소, 부실 수사 의혹의 중심에 서고 말았습니다. 수사 초반의 성과를 살리지 못하고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은 경찰 수뇌부의 자충수가 한 몫을 했다고 봅니다.

►12월 9일. 사건 기록과 주요 피의자를 검찰로 송치하며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최구식 의원의 운전기사 공모씨의 ‘우발적 단독범행’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다름 아닌 경찰 스스로에 의해 이후 3번이 번복됩니다.

►12월 14일. 주요 관련자들 사이에 1억 원의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됩니다. 경찰청 수사팀은 ‘개인들간의 사적 거래’로 ‘범행 관련성은 없다’는 결론을 내놓습니다. 9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달라질 게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 12월 15일. 첫 번째 입장 번복이 나옵니다. 오전 11시 20분. 두장 짜리 보도자료가 갑자기 기자들에게 전달됩니다. 국회의장실 비서 김모 씨가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모 씨에게 송금한 돈 1천만 원의 성격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보도자료에서 경찰은 ‘디도스 공격에 대한 대가성 금액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정반대 결론을 내놓습니다.

이유는 다음 4가지를 들었습니다.

1. 평소 금전거래가 없다가 처음 돈거래가 있었던 점
2. 거래하면서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은 점
3. 이 돈이 다시 디도스 공격을 실행한 강 모 씨에게 건너간 점
4. 국회의장 비서 김 모 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 거짓반응 결과가 나온 점

이 보도자료는 조현오 경찰청장의 지시로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불과 20분도 채 안 돼 경찰의 입장은 다시 뒤집힙니다. 보도자료가 나온 뒤 설명에 나선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보도자료는 무시하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황 기획관은 '금전 거래의 대가성'은 없으며 우발적 단독 범행이라는 경찰의 결론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두 번째 입장 번복입니다.

       


► 하루 뒤인 12월 16일. 경찰의 입장은 세 번째 바뀝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경찰청 기자실을 찾아왔습니다. 황운하 수사기획관을 비롯한 수사팀을 대동한 상태였습니다. 조 청장은 '어제 보도자료가 경찰의 공식 입장'이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하루 전 수사기획관이 '무시하라'고 했던 바로 그 보도자료였습니다. '자신은 대가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수사기획관의 반대 입장이 완강했다는 게 조 청장의 설명이었습니다. 즉 경찰의 총수인 청장과 수사팀의 입장이 엇갈렸다는 겁니다. 경찰의 수뇌부가 수사 결론을 놓고 공개적으로 이견을 노출하는 상황, 저는 잠시 제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수사팀의 결론을 경찰청장이 뒤집고, 청장 지시로 나온 보도자료를 수사팀이 무시하자 청장이 직접 나서 수사팀을 질책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돈거래의 대가성이 없다'에서 '대가성 배제 못한다'로, 다시 '대가성 없다'에서 '배제 못한다'로 경찰 수뇌부의 결론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뀐 셈입니다.

앞서 경찰의 '자충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저는 이런 황당한 입장 번복이 경찰의 가장 큰 ‘자충수’라고 봅니다. 청와대 행정관 소환사실과 관련자 돈거래 내역을 발표하지 않았던 점도 물론 의혹을 키웠지요.

청와대 개입설과 경찰 수뇌부 축소 은폐설 등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사건 초기 경찰 수사팀에 진정성은 있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돈거래에 대한 수사팀의 결론 도출 과정도 일견 이해되는 면이 있습니다. 통상 범죄에 사용되는 현금이 아니라 추적이 쉬운 계좌송금으로 돈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실체가 무엇인지는 지금으로선 당사자들만 진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또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든 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이 무엇을 믿느냐는 것일 겁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발적 단독범행'이란 경찰의 당초 결론을 믿는 국민들이 많은 것 같진 않습니다. 일단은 이어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 새로운 전모가 드러날지도 지켜봐야겠습니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며 입장을 번복하고 자중지란을 일으킨 경찰 수뇌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불신을 자초한 책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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