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 대회 회의장에선 활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만호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계란에 젓갈까지 뒤집어 썼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소동의 주체가 도대체 누구냐'였습니다. 이날 '소동의 주인공'은 바로 의사들이었습니다. 젊은 의사 5천 2백여 명으로 구성된 전국의사총연합회 회원들이었습니다. 이들도 대한의사협회 회원입니다.
전국의사총연합회 대표를 만났습니다. 대표의 설명은 한마디로 젊은 의사들이 경만호 회장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들에 대해 강한 불신과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회장 선거제도가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표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협회장과 협회 대의원들이 오히려 의사들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정부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 정점이 바로 지난 8일에 통과된 '선택적의원제도'였고, 이에 강한 불만을 가진 의사들이 폭발한 것이라고 덧붙었습니다.
대체 '선택적의원제도'는 어떤 제도이고, 무엇 때문에 일부 의사들이 이토록 반대하는 걸까요. '선택적의원제도'는 만성질환자가 의원을 선택하면 정부가 그 의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환자는 그만큼 치료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전국의사총연합회 의사들은 치료비는 줄일 수 있지만, 의료의 질은 떨어진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자 입장에서는 당장 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일부 환자들은 의사 선택권을 박탈당한다며 반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 왜 이 제도로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의사들의 진료행위를 평가하는데, 그 평가기준이 싼 진료를 하는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효과는 좋지만 비싼 약을 처방하기 보다는 가격이 싼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평가가 좋아지고 이 때문에 환자들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질 낮은 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전국의사총연합회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큰 병원의 유명한 의사들에게만 환자가 몰리는 '집중화' 현상도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숨겨진 이유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의사의 진료행위를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습니다. 어떤 약을 처방하는지, 어떤 의료행위를 하는지 정부의 간섭을 받는다는 것이 의사들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중화' 현상으로 선택받지 못한 의사들의 문제는 더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동네까지 병원들이 들어가 있는데, 이 선택적의료제를 통해 선택받지 못한 의사들은 당장 수입이 크게 줄어 폐업의 위기까지 몰릴 수 있다는 겁니다.
대한의사협회는 말을 아꼈습니다. 내부 갈등일 뿐이고, 이번 사태를 폭력행위로 규정하고 주동자에 대해서는 협회 자격박탈과 형사 고발을 하겠다는 성명서만 발표했습니다.
결국, 이번 활극은 의사사회의 세대 간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병원만 개업하면 그 누구보다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 의사사회는 생존자체가 문제인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속된 말로 좋은 시절 의사를 하면서 부와 명예를 다 얻고, 지금은 대한의사협회 대의원을 하고 있는 구시대 의사들과 자신의 밥그릇을 지켜야만 생존할 수 있는 젊은 의사들의 첨예한 시각 차이와 갈등이 빚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어땠을까요. 아마 그냥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을 겁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의사 사회에서는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