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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신주 어깨가 너무 무겁다

[취재파일] 전신주 어깨가 너무 무겁다

지난 11일 저녁 6시50분쯤, 서울 화곡동 화곡터널 앞 삼거리. 멀쩡히 서 있던 16미터짜리 전신주가 바로 앞 횡단보도 쪽으로 쓰러졌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나 차가 없었기 망정이지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주변 4천여 가구가 한 시간 동안 정전됐습니다.

전신주가 왜 쓰러졌을까.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 외부 충격이거나 내부 결함에 따른 문제로 추정됐습니다. 한국전력은 “외부충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한전 강서지점 유재철 차장은 “외부 차량이 전신주에 충돌했거나, 전선을 미는 등 외력에 의한 전주 도괴로 추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전이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시내 전신주를 전수 육안 조사했을 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전신주 사고의 대부분은 차량 돌진에 의해 발생합니다. 한전 측에서 제공한 다음 자료에서 보면 ‘차량돌진’ 등 일반인 과실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그러나 사건 발생시간이 저녁 6시 50분인 걸 감안하면 차량 충돌이 있었다면 누군가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차량이 전신주에 들이박았다거나 케이블 선을 끌었다는 목격자 증언이나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신주가 노후했기 때문일까? 사고 전신주는 18년 전에 세워진 겁니다. 한전에선 “전신주의 수명을 30년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사고 전신주는 절대 노후한 게 아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18년 전 전신주가 짊어졌던 시설물의 무게가 지금과 같았을 때에나 통하는 얘기일 겁니다.

1990년대 초반, 문제의 사고 전신주를 세울 땐 지금처럼 수많은 케이블 선들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각 가정의 인터넷 사용이 활성화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 또 케이블 방송(SO)이 ‘지역독점’ 허가를 받아 세를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건 2000년이 넘어서입니다.

                   



이후 전신주에 덕지덕지 붙기 시작한 케이블은 전선-전신주가 버텨야할 기본역할-의 무게를 뛰어넘었습니다. 케이블 방송, 인터넷 통신망 등은 전신주에서 전선이 지나다니가 는 곳보다 훨씬 아랫부분, 지상에선 약 5~6미터 높이에 몸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런 케이블선 뭉치가 전신주나 통신주 등에 매달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됐습니다.

단순히 무게만 문제가 아닙니다. 연결돼 있는 형태를 보면 각 전신주간 당기는 힘의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걸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케이블의 하중은 바람의 영향을 받으면 배가되는데, 한쪽 방향으로 힘을 수년간 계속 받다 보면 전신주도 기울어지거나 넘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전신주 시공․보수업체 대표와 함께 사고 전신주 근처를 살펴보니, 5도 이상 기울어지거나 금이 간 전신주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전 측도 케이블이 과다하게 연결된 전신주를 ‘과적 전신주’라고 명명하며 별도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과적 전신주란 전신주 하나당 12조(가닥) 이상 케이블이 연결돼 있는 전신주를 말하는데, 전국적으로 이런 과적 전신주는 11만 기가 넘습니다.

        



이제 이런 과적 전신주 문제가 서서히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사당3동 전신주 사고에 이어 이번 화곡동 사고까지 터지면서 한전도 더 이상 전신주 사고의 원인을 외부 요소로 돌릴 수만은 없게 됐습니다.

전신주 보수업체 관계자는 “한전 측이 4~5년 전부터 석탄비용이 급등하면서 전기 생산원가가 오르자 전신주 등 보수예산을 크게 낮췄다”면서 “앞으로 이런 과적 전신주를 중심으로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전 측도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사고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오래된 전신주를 콘크리트가 아닌 철주로 바꾼다거나 마구 연결된 케이블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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