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정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연말이되면 얼굴이라도 꼭 한 번 보려는 모임도 참 많습니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 군대, 직장까지...
그래서 대부분 12월이 되면 이 많은 모임의 송년회를 치르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그런데 즐거워야할 이 송년회가, 특히 직장에서 하는 송년회가 솔직히 '고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왜 송년회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물어봤습니다. '지나친 과음'이라고 대답한 직장인이 가장 많았습니다. '금전적인 부담'과 '다음날 업무에 영향을 줘서'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또 다른 취업포털사이트의 조사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응답자의 70%가 기존의 술을 마시는 송년회는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21.5%는 어쩔 수 없이 참석한다고 응답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꺼려지는 송년회는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송년회가 가장 높았고, 끝날 줄 모르는 술자리, 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적인 송년회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역시 무엇보다 술이 송년회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곱씹어보면 이면에는 ‘강요’에 의한 스트레스가 크다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기분 좋게, 먹고 싶은대로 술을 마신다면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겁니다. 설문조사 결과에도 나왔듯이 상사의 눈치를 보고 술자리에 '억지로' 있으니 스트레스가 되는 겁니다. 다음날 업무에 영향을 줄 때까지 늦은시간까지 많이 마시는 건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며 남아서 마시는 경우가 많아서이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강요'에 의해서 먹고 마시는 술이 송년회의 스트레스가 되는 거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송년회에서 일어나는 '강요'는 이렇게 간접적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난주 서울대학교 노조게시판에 간호사들에게 춤 공연을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이 대자보가 인터넷으로 퍼지면서 '간호사 댄스 공연'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서울대학교 수술방에서 연말 송년회를 하는데, 수술방 간호사들에게 송년회 때 춤을 출 것을 ‘강요’해 간호사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단순히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간호사들은 이 행위를 통해 성적 수치심과 자존감을 잃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겁니다. 서울대학병원에 있는 관계자를 만나 간호사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송년행사에서 의사들은 고상(?)하게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고, 여자 간호사들은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고, 요즘 아이돌그룹의 노래에 맞춰 섹시한 춤을 춰야 하는 겁니다.
스스로 노래와 춤을 좋아해서 장기를 뽑내고 싶어하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그런 분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렇게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조직원으로서 '강요'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는 건 비단 이 병원의 일만은 아닙니다. 여전히 관료적인 조직문화가 조금은 남아있는 만큼, 상당수의 직장인들은 한 번쯤은 이런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된 쉴 수 있는 편안한 송년회를 원했습니다. 한 취업포털사이트의 조사 결과 공연 관람과 같은 문화 활동을 같이 하기를 원했고, 한 해의 노고를 격려하는 시상식 송년회, 봉사활동을 같이 하는 의미있는 송년회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술 한 잔 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것도 풀고 이야기도 좀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그들의 표정이 어땠는지를 곰곰히 떠올려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 송년회는 지난 송년회보다는 좀 더 마음이 푸근한 송년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