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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음력 그믐이면 해안선이 떤다

이용식 기자 yslee@sbs.co.kr

작성 2011.12.09 18: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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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음력 그믐이면 해안선이 떤다

충남 서천군 비인면 다사리에 가면 해안선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높고 거친 파도에 두들겨 맞아 속살을 드러낸 채 갈기갈기 찢긴 해안선이 구조요청을 하듯 신음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고운 모래로 덮여있던 백사장은 절반 가량이 사라져 자갈밭으로 변했고, 사구에 심어놓은 방풍림 소나무 숲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더군요. 바닷물에 씻겨 상처를 입은 해안 방풍림 구간은 650미터 가량. 침식작용이 계속되면서 절단된 소나무 숲은 높이 4-5미터 가량의 절개지로 변해 지금도 살짝 건드리면 토사가 쏟아져 내립니다. 이미 최대 폭 20여 미터의 방풍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피해 입은 소나무는 100여 그루로 수령 30-40년 된 것들입니다.  

해안선 침식은 달의 인력에 의해 바닷물이 가장 높게 들어오는 사리 때, 즉 음력 그믐 쯤입니다. 한달에 한번 높은 밀물이 들어올 때면 방풍림 토사가 더욱 깊은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믐날을 제외한 평일엔 밀물의 높이가 낮아 방풍림까지 도착을 하지 못합니다.  

방풍림은 국유림이어서 산림청이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해안선이 파도에 씻겨 상처를 입기 시작한게 2년 전 쯤 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도 백사장의 유실이 조금씩 진행됐지만 2009년 봄부터 모래밭이 패여 자갈이 겉으로 드러나고 방풍림 소나무 숲이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원인조사를 벌인 결과, 해안침식을 일으킨 주 원인은 방풍림 바로 옆에 조성된 연안산책로 였다고 산림청은 설명합니다. 이 해안길 1.2km 구간은 서천군이 지난 2004년 시작해 지난 해10월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연안 산책길이 침식의 원인이라고 꼭집어 말할 수 는 없지만 방풍림 훼손 시기와 연안길 마무리 공사 시점이 묘하게 일치해 의심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서해의 경우 조류가 강한 해역이기 때문에 방파제나 호안공사로 인공 구조물이 들어설 경우 조류의 흐름패턴이 바뀌면서 극단적인 지형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파도의 방향과 높이에 영향을 줘서 연안침식을 일으킨다는 설명입니다. 연안산책로 공사를 하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했을텐데, 연안 침식의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한것인가? 의구심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방풍림이 심각하게 침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림청의 대응도 허술했습니다. 산림청은 지난해 11월쯤 백사장의 유실을 막기위해 모래포집기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연안에서 바다로 30-40미터 떨어진 지점에 말뚝을 박고 대나무발을 매달아 설치하다보니 효과가 전무했습니다. 태안 기지포 해수욕장에 설치해 사구복원에 성공한 모래포집기의 원리는 백사장에 남아있는 모래가 바람에 날려 연안쪽으로 들어온 뒤 포집기 대나무발에 걸려 다시 씻겨나가거나 바람에 날려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쌓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림청이 침식연안에서 바다 쪽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곳에 설치하다보니 바람에 날려오는 모래를 붙잡아 둘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밀물때 포집기가 물속에 잠겨버리게 돼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모래 포집기는 설치 1년만에 대나무발이 파괴돼 사라졌고 말뚝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습니다.

침식속도에 다급해진 산림청은 내년 봄쯤 복원공사를 시작한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복원 방식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친환경공법을 활용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백사장 일부와 해변을 보호하기 위해선 큰크리트 방파제 같은 인공 구조물은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중인 침식에 무대응도 한 방법이 된다고 말합니다. 방풍림에서 가까운 곳에 민가나 농경지가 없기 때문에 해안선이 침식돼 무너져 육지 쪽으로 파고 들어온다 해도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다면 그냥 놔 두는 것도 괜찮다는 얘기입니다. 방풍림이 어느정도 씻겨 나가게 되면 침식이 멈출수 있고 연안토사가 완충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태환경 변화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전시성, 땜질식 처방의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사리 해안의 비명소리가 웅변해주고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개선되지 않는 실패의 단순 반복은 파멸을 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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