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점 하나에 수억 원

이우환의 그림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를 꼽자면, 뭐니 뭐니 해도 백남준입니다. 백남준의 영향으로 독일 뒤셀도르프는 미디어 아트의 중심지가 되었고, 미디어 아트는 현대미술의 어엿한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다음을 꼽자면, 이우환 작가일 것입니다. 이우환 작가는 아마 생존하고 있는 한국 작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입니다. 일찍이 일본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는데요, 지난해에는 나오시마에 작가의 이름을 딴 ‘이우환 미술관’이 세워질 정도입니다. 지난 6월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생존 작가가 구겐하임에서 회고전을 여는 일도 드물거니와, 우리나라 작가로는 백남준에 이어 2번째여서 더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전 세계인이 ‘이우환’ 하면 두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 정도이니까요.

그런 이우환 작가가 오랜만에 고국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대화(Dialogue)' 시리즈 10점을 선보였습니다.

                              

                          Dialogue,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291×218cm, 2011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커다란 점 하나가 찍힌 하얀 캔버스입니다. '설마 저게 다는 아니겠지' 하고 옆을 돌아다보면, 더 가관입니다.

                            

                          Dialogue,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22×27.3cm, 2011

마치 '티끌' 같은 점이 찍힌 하얀 캔버스가 떡하니 걸려 있습니다.

전시장을 다 둘러봐도 온통 점뿐입니다. 점이 찍힌 위치와 캔버스의 크기만 달랐지, 10점 모두 다 점입니다.

'어라, 저게 뭐야.......', '저런 건 나도 하겠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이럴 것입니다. 점이 세계적인 작품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작품의 가격입니다. 대부분이 억대를 호가하는 작품들입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국내 경매에서 낙찰된 이 작가 작품의 낙찰 누적가는 467억여 원으로, 1위에 올라 있습니다.

도대체 저 점이 뭐기에, 전 세계인은 환호하는 것이며, 작품 가격은 왜 그렇게 비싼걸까요.

이 작가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볼 것이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볼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이 작가는 전혀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이게 뭘까' 생각해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우환 작가. 사실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가가 이 점을 하나 찍기 위해서는 무려 2달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캔버스를 앞에 놓고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점을 찍을 위치를 정합니다. 위치가 정해지고 나면, 돌가루를 섞은 물감을 붓에 발라 붓질을 시작합니다. 붓질도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붓 자국이 살아나는 순간까지 또 말려야 합니다. 그 기간만도 열흘 정도가 걸립니다. 붓 끝에 모든 생각과 모든 기운을 모아서 캔버스 위에 점을 찍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작업실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데, 즐겨 듣는 곡은 없습니다. 명반을 듣지도 않습니다. 음악이 너무 좋으면 그걸 듣느라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작가는 생각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잡음을 막아주는 그런 음악을 선호합니다.

점을 그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점도 함께 일그러집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가다듬을 수 있는 자세를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도를 닦는 과정인 것입니다.

                        

                                  작품 크기를 알기 쉽게 손 크기와 비교해 봤습니다.

티끌처럼 보이는 작품도 무려 11번이나 실패를 한 뒤 나온 작품입니다. 서너 살 먹은 아이도 할 수 있을 법한 '터치'이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캔버스 11장을 버렸습니다. 갖다 버린 재료값만 해도 2백만 원이 넘지만, 맘에 들지 않는 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비싼 캔버스가 아까워서라도 꽉 채워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도 듭니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는 '여백'-이 작가는 '여백 효과'라고 부릅니다-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점은 모든 에너지가 집약된 '극한'의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이 점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점 밖에 있는 여백이 관객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점은 단지, 이 여백에 울림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종을 치면, 그 울림이 ‘은파’처럼 퍼져 나가죠. 점도 여백으로, 또 캔버스 바깥으로, 전시회장으로 울림을 가져다주는 꼬투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구겐하임 전시 때에도 맨 마지막 전시실은 하나의 방이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떡하니 걸린 그림은 또 점 하나가 찍힌 그림입니다. 관람객들은 그 방에 앉아서 그림을 보게 되는데요, 그 순간 그 울림을 느껴보라는 의도였습니다. 실제로 관람객들은 울림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그 방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참동안을 서 있어야 했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어린 아이도 그릴 법한 그림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데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오직 점만 생각하고 그려온 그의 철학을 그림 속에서 느끼면, 그 때는 그 점이 ‘걸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싶으면, 그 때는 그냥 보고 스치면 됩니다. 내 마음과 머리에서는 ‘아니’라고 하는데 자꾸 ‘맞다’고 강요하는 건 ‘폭력’이니까요.

누구나 한 번쯤 직접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워낙 유명한 작가의 전시이기 때문에 전시장에는 항상 사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 전시만큼은 이왕이면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그림을 감상하기를 추천합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어쩌면 산사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조용한 종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 이우환 개인전 Dialogue - 갤러리 현대, ~18일까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