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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면허 운전자에게 1,500억이 샌다

[취재파일] 무면허 운전자에게 1,500억이 샌다

지난 7월 금융감독원은 무면허 운전 중에 발생한 사고를 고의로 숨기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 지 알아보기 위해 기획조사에 착수했다. 방법은 전수 조사가 아니라 2009년 3월부터 2011년 6월 사이에 운전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된 운전자 116만 여명의 사고 관련 자료. 조사 결과 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된 상태에서 차를 몰다 사고를 낸 운전자 8,146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보험금까지 부당 수령해, 이들이 타 낸 보험금만 103억원. 이들의 명단은 수사기관에 통보됐다.

자동차보험 약관상 무면허 운전자가 사고를 냈을 때도 보험금은 집행된다. 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대신 일부 보험금에 대해서는 운전자가 자기부담금을 내야 한다. 구체적으로 책임보험인 ‘대인1’은 200만원, ‘대물’은 50만원의 자기부담금을 내야 보험금이 지급된다. 종합보험 성격인 ‘대인2’와 ‘자기차량손해’에 대해서는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선 사고를 낸 운전자의 면허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보험회사로선 속수무책이다. 사고 운전자의 면허가 이미 정지나 취소된 상태여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전적으로 보험 가입자(=운전자)의 진술에 의존해야 한다. 경찰이 관련 정보를 보험회사에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면허 운전자는 통상 사고현장에 출동한 보험회사 직원에게‘면허증을 집에 놔 두고 나왔다’고 둘러댄다. 그리고 나중에 보상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외워 둔 면허번호를 불러주거나, 미리 복사해 둔 면허증 사본을 제출한다.

이런 방법으로 부당하게 지급되는 보험금은 얼마나 될까? 보험개발원은 보험회사측 통계를 근거로 했을 때는 연간 750억원, 경찰청 통계를 이용했을 때는 1,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운전 자체를 하지 말아야 될 무면허 운전자들에게 보험금이 줄줄 샌 것이다.



그렇다면 부당하게 보험금을 타 낸 무면허 운전자들은 처벌될까? No! 무면허 운전자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속이려 했다는 부분을 경찰이 입증하지 않으면 처벌이 힘들다. 때문에 상당수가 불기소 처분되거나 무혐의로 내사 종결되는 게 현실이다. 일부 나중에 확인된 사례가 있다면 보험회사들이 보험금 반환을 요구하는데 운전자(=보험 가입자)가 순순히 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배째라, 돈 없다’고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럼 소송으로 가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보험회사들에게 사고 접수 단계부터 운전자의 면허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지도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래서 요즘 보험회사 콜센터 직원들은 사고신고가 들어오면‘고객님 운전면허 상태는 정상 상태 맞으십니까?’ 또는 ‘운전 가능한 면허 상태 맞으시죠?’라고 묻고 있다. 질문과 대답은 녹음돼 보관되는데 여차하면 나중에 보험사기임을 따지는 증거로 활용된다. 이런 질문은 보험 가입자를 ‘잠재적 사기꾼’으로 보는 것이어서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다. 하지만 막대한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이 문제는 총리실에 설치된‘정직한 보험질서 확립 대책 추진 태스크포스(TF)’에서 심도 깊게 논의됐다. 보험회사들이 운전자의 운전면허 상태만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도 사실상의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막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를 위해‘정보를 보험회사에 주자’는 생각인데 비해 경찰은 아직까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법 개정이 없는 한 곤란하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는 또 다른 흥미로운 논점을 제공한다. 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된 운전자(=보험 가입자)는 정지, 또는 취소 기간에 운전을 해선 안되기 때문에 그 기간에 해당되는 만큼의 보험료를 깎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된 운전자는 사고 위험이 더 높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보험료 할증 요인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IMF 이후, 공적자금은 한때 먼저 본 사람이 임자란 말이 나돌았다. 이젠 보험금이다. 보험사기는 이제 너무나 흔해졌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최대한의 보험금을 타내지 못하면 바보라는 인식 또한 만연해 있다. 물론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총리실 TF에서 진전된 방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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