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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때밀이 수건의 위력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② 페코마트(PECOMART)

한국 사람들에게는 '샤워'와 '목욕'의 개념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샤워는 가볍게 몸을 씻어 내는 것, 목욕은 탕에 들어가서 반신욕이나 전신욕도 좀 하고, 때를 밀어줘야 하는 것 정도랄까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 '의식'을 해줘야만 몸이 시원해진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때를 미는 목욕을 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외국 사람들은 몸에서 각질이 좀 일어나는 느낌이다 싶으면 스크럽 제품을 사용할 뿐인데요, 한 번 한국의 '때밀이 목욕'을 경험하고 나면, 그 오묘한 느낌을 계속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본 관광객의 필수 쇼핑 목록에는 이 때밀이 수건이 들어가 있고요. 한 때 '때밀이 아주머니'-요즘엔 '세신(洗身)사'라고 부릅니다-들이 일본으로 '수출'까지 됐었다고 하죠.

우리만의 독특한 목욕 문화에서 나온 이 '때밀이 수건'이 또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은 다른 용도입니다.

                 



생긴 건 영락없는 때밀이 수건인데, 사람 몸을 닦는 게 아니라, 현대인들의 분신이라 할 정도로 몸에 딱 붙어 다니는 스마트폰을 닦고 있습니다. 일명 ('스마트폰 때밀이 수건')입니다. 스마트폰 쓰다보면 자주 더러워지죠. 그때마다 옷으로도 닦고, 휴지로도 닦는데, 좀 더 깨끗하게 닦으려면 안경 닦는 천으로 닦기도 하죠. 이 때밀이 수건이 바로 이 천, 극세사로 만들어 졌습니다. 때밀이 수건처럼 손에 딱 끼워서 때를 밀듯 문질러주면 액정이 곧 깨끗해집니다.

                 


출시된 지 이제 여섯 달 정도 밖에 안 된 따끈한 '신상'인데요, '때밀이 수건'이 스테디셀러로 사랑받듯, 이 '스마트폰 때밀이 수건'에 대한 반응도 벌써부터 뜨겁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수출 주문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이 '스마트폰 때밀이 수건'을 만든 사람은 26살 이민혜, 30살 이성진 디자이너입니다. 둘이 함께  '페코마트(PECOMART)'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디자인을 시작한 지 이제 2년도 채 안 된 신인 디자이너들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액정이 더러워지면 아무거나 주워서 닦게 되는데, 그게 싫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때밀이 수건만한 게 없더랍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제작 동기는 참 단순하죠.^^;;

사실 '스마트폰 때밀이 수건'이 페코마트의 데뷔작은 아?닙니다. 이미 이들은 데뷔작으로 뉴욕까지 진출한 숨겨진 '한류 스타'였는데요, 이들의 데뷔작은 지난해 나온 '밋 버거(Meet Burger)' 제품입니다.

                 



'밋 버거(Meat Burger,, 고기버거)'가 아닌 '밋 버거(Meet Burger, 만남 버거)'. 영락없는 햄버거 모양의 이 제품은 뭐하는 데 쓰는 걸까요? 햄버거를 만드는 반대 과정으로 빵, 고기, 양상추, 토마토, 치즈를 한 겹 한 겹 벗겨내 보겠습니다. 그 위에 컵을 올리면... 짜잔... 바로 컵받침입니다.

                 


지난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계자가 우연히 이 '밋 버거'를 보게 됐는데요, 그 기발함에 혀를 내두르며 바로 페코마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MOMA의 아트샵에서 판매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 때부터 '밋 버거'는 현대 미술과 디자인의 중심지 중 한 곳인 뉴욕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MOMA에서 이 제품을 접한 다른 미술관 관계자들의 문의가 폭주했고, 지금은 시카고에 있는 현대박물관,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콜레뜨라는 브랜드에서도 '밋 버거'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페코마트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대인의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껌처럼 생겨서 냉장고에 딱 달라붙는 마그네틱, 오징어 다리를 뜯어먹듯 하나씩 뜯어 사용하는 접착 메모지, 음료수병과 똑같은 디자인의 스티커 편지지-하고 싶은 말을 써서 그 음료수 위에 붙여 전달하면 됩니다-, 심지어는 과자 냄새가 그대로 나는 먹음직스런 과자 메모지-나초 모양의 메모지에서는 나초 냄새가, 감자칩 모양의 메모지에서는 감자칩 냄새가 납니다!-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제품이 '유머'를 입고 다른 용도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국적과 관계없이 누가 봐도 기발하고 재미있는 제품입니다. 지난 9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생활 디자인 박람회에서도 페코마트의 제품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평 남짓한 작은 부스에 제품을 내놨을 뿐인데, 하루 종일 북적였다고 합니다.

한 검정 정장 차림의 덩치가 좋은 백인 남성은 페코마트의 부스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심각한 얼굴로 서 있더랍니다. 페코마트 디자이너들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 남성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폭소를 터뜨리며 디자이너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이제야 제품의 용도를 알았다"면서 그렇게 또 한참을 웃다 갔다고 합니다.

또, 초록색 바지에 빨간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옷차림도 심상치 않은 남자가 와서 디자이너들을 찾더랍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명품 브랜드 '폴 스미스'의  디렉터. "MOMA에서 '밋 버거' 제품을 샀는데,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좋아서 항상 페코마트가 누구일지 궁금했다"면서 "폴 스미스와 함께 일해보자"고 협업 제안까지 했습니다.

이제 막 디자이너 업계에 발을 디딘 신인 디자이너들인데 정말 엄청난 반응인 것이죠. 혹시 누가 옆에서 도와주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부터 제품 일러스트, 제작, 특허 관리, 판매, 유통망 관리, 수출까지 이민혜, 이성진, 두 디자이너가 다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성진 디자이너는 디자인 회사를 차리기 위해 잘 다니던 광고 회사까지 그만두고, 택배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품 유통 과정을 배우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자본금이 없다보니, 돈이 많이 드는 특허나 수출 업무는 독학으로 공부하며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음료수 병 모양의 편지지는 혹시나 디자인 침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특허권까지 직접 공부하며 제품을 출시했고, 과자 냄새가 나는 메모지는 식품안전법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 법 공부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과자에 들어가는 식품 첨가물을 조그마한 패치에 넣어 메모지 봉투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저랑 동갑이거나 저보다 어린 나이인데도, 추진력과 열정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취재를 하는 제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기발하고 재미있는 제품들을 내놨으니, 이만하면 '비축해놓은 아이디어'가 다 바닥이 나지 않았을까, 약간은 질투심이 묻어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아이디어가 넘쳐요."

지나가면서 보는 모든 것이 제품의 소재가 된다는데요, 이들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이름처럼, 누구나 아무 때나 드나드는 '마트'처럼, 누구라도 언제나 자신들의 제품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합니다. 또, 마치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 겸 장을 보러 가는 것처럼, 자신들의 제품을 나들이 가는 듯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용해주길 바랐습니다. 도대체 앞으로는 어떤 제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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