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했다', '시신을 8개월 방치했다', '그리고 버젓이 수능시험까지 치뤘다'
저 같은 경찰 기자들은 직접 기사를 발굴하기도 하지만, 때론 경찰이 발표하는 보도자료에 기반해 보도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 주 목요일 출근해서 경찰의 위와 같은 보도자료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이유가 '전국 1등을 하라고 해서'였고, 그 부담감에 성적표를 조작했는데 다음 날 있을 학부모 총회에서 어머니가 알게될 까봐 살해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해 시체를 8개월간 유기했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만으로도 보도할 필요성은 충분했는데, 거기에 반 1등도, 전교 1등도 아닌 전국 1등을 강요해서 살해했다는 것. 학벌주의 사회의 병폐를 꼬집을 수 있는 내용까지 더해진데다, 수능이 끝난 시의성까지 더해져 보도필요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대담하게 수능시험까지 치뤘다는 뻔뻔함까지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번 경찰의 보도자료는 일방적으로 학생의 진술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전국 1등'을 강요했다는 것도, 어머니가 10시간 넘게 체벌을 가했다는 것도, 자신이 전국 4000~5000등을 했었다는 것도, 스트레스에 전국 62등으로 성적표를 조작했는데 그것이 들통날 것이 두려워 살해를 했다는 것 모두 살해를 한 학생의 진술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학생의 어머니가 살아있어 본인이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체벌을 가했노라라고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상황이면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이미 망자(忘者)가 되어버린 상황 검증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실제로 '전국 1등'을 하라고 강요할 정도라면, 이 학생이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인지, 전국 1등을 할 가능성이 있었던 학생인지도 알아 볼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많은 언론이 학생의 진술을 따 '전국 1등'강요 스트레스로 살해라고 제목을 뽑을 것이 불보듯 뻔했지만, 저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증은 쉽지 않았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에 없고, 학생도 유치장에 있는 상황이라 만나볼 수 가 없으니 다른 사람의 '전언'을 통해서 학생 진술의 타당성을 추정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서 1. 이웃주민들의 진술
우선 이웃주민들의 이야기로 평소 모자의 관계를 추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범행이 벌어졌던 학생의 집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해당 학생이 인사성도 바르고 착실한 학생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가끔씩 집에서 어머니와 학생 간에 고성이 오가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어머니가 학생을 체벌하는 듯한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학생이 자신의 자전거에 어머니를 태우고 산책을 자주 나갈 정도로 모자 사이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지는 못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부터 학생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올해 초라면 학생이 범행을 했다는 3월과 시기가 비슷하게 떨어집니다. 주민들은 학생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서 의아해 하기는 했지만, 학생의 집 자체가 주민들과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 초부터 이상한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평소에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오지 않던 학생이 올 초부터는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들을 집으로 들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것 처럼 보일 때는 집에서 이상한 굉음이 나고, 쿵쾅거리는 소리도 나고 했다는 겁니다. 어머니가 시체가 옆방에서 썩어가고 있는데, 친구들을 집으로 들여서 놀았다. 한편으로는 엽기적이고, 한편으로는 학생이 힘들고 무서워서 친구들을 들여서 그것을 잊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단서였습니다. 그리고 혼자있을 때는 소리를 지르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 것 같다는 이웃주민들의 이야기는 학생이 범행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학생이 힘들어 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단서였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모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헤드라인으로 뽑은 것 처럼 '전국 1등'을 강요해서 그 스트레스에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을 증명할 단서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단서 2. 학교 생활과 성적
이 학생이 얼마나 공부를 하기에 어머니가 '전국 1등'을 강요했을까? 전국 1등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학생에게 '전국 1등'을 강요했을리는 없다는 전제로 이 학생이 얼마나 공부를 하는 학생인지 검증해 보기로 하고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까지는 내신 1,2등급을 유지하던 준수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학년 때는 3,4등급으로 성적이 떨어지더니 3학년 때는 5,6등급까지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학생이 다니는 K고등학교의 경우 소위 말하는 공부를 썩 잘하는 학교는 아니라서, 학교 관계자의 말을 빌자면 해당 학교에서 내신 1급 정도라면 다른 학교에서는 내신 3등급 정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범행이 1학기 초에 발생했으니, 2학년 때 내신등급이 3,4등급 정도였으니 다른 학교, 그리고 전국에서의 수준은 어느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전국 4000~5000등 정도를 하는데 어머니가 성적 압박때문에 전국 62등으로 성적표를 고쳤고, 어머니는 그것에 만족 못 해 전국 1등을 강요하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로 살해했다는 범행 동기의 기본 사실 하나가 무너졌습니다.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으나, 그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아들에게 '전국 1등'을 강요했을까? 아무리 아들이 성적표를 위조해서 가져다 줬다고 하더라도 공부 잘해야 한다며 매를 들 정도로 열성적인 어머니가 아들이 학교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렇게도 모를 수 있을까?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 총회는 범행 다음 날 예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작한 성적표가 다음날 있을 학부모 총회에서 발각될까 두려워 범행을 했다는 범행 동기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전국 1등'을 해야한다며 '서울대학교'에 진학해야한다며 압박했다는 것, 그리고 10시간 이상 체벌을 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단서 3. 현장 검증과 아버지의 진술
학생이 검거되고 얼마 안 되, 학생 집에 대한 현장 검증이 이뤄졌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현장 검증에서
위조한 것으로 보이는 성적표와 일본도 여러 개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당일 찾아간 학생 집의 우편함에는 카드대금의 연체로 압류가 진행된다는 고지서가 날아와 있었습니다. 학생이 어머니 카드로 무엇을 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단서였습니다. 왜 일본도를 샀는지, 왜 그것을 구입했는지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 했지만, 일본도에서 연상되는 고정관념을 대입해 보면 학생이 범행 이후 이상행동을 보였고, 그것의 범행 후유증에 학생이 힘들어 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학생의 아버지가 진술했습니다.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 해 왔는데, 학생의 어머니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줬다, 체벌을 자주 가하기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밝힌 직접적인 살해 동기를 증명하기에는 미흡했습니다. 더욱이 해당학생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학생가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범행 당일 혹은 범행이 있을 즈음 학생과 어머니의 관계를 적확하게 증언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전국 1등'을 강요했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요했다는 사람이 이미 망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의 진술만 있는 상황. 자신이 범행을 했다고 순순히 시인을 학생이 밝힌 살해 동기를 믿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방어기제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학생이 이미 자신의 범행이 탄로가 난 상황에서 방어기제가 발동해서 어머니가 '전국 1등'을 강요했다는, 사람들이 봤을 때 그 심적 고통이 어떠하겠느냐고 이해를 할 만한 이유를 말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전날과 사건 당일 어떤 일이 있었을지는 학생과 망자가 된 학생의 어머니만 알 뿐입니다.
경찰의 발표가 있고, 대다수 언론이 '전국 1등' 강요 때문에 살해했다고 제목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1등을 강요하는, 좋은 대학을 강요하는 학벌주의가 낳은 비극이라는 추가 기사가 덧붙여졌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학생의 살해와는 별개로 '학생의 어머니가 학생한테 전국 1등을 강요했다더라. 유별난 엄마다. 학생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학생의 진술에만 의존해서, 말이 없는 망자를 그런 사람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답답했습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없기에.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자 모두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는 겁니다. 달성하지 못 할 목표를 강요했거나 아들의 성공을 위해 혹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어머니의 노력은 아들 손에 운명을 달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어머니 만족을 위해, 혹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을 아들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생을 자신의 손으로 마감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어머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산책을 나갔던 아들은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놓여있을 자전거를 보고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썩어가는 어머니의 시신을 옆에 두고 잠을 자던 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아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어머니는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성공을 바라마지 않았을 아들이 육신이 썩어가는 자신의 옆에서 잠든 모습을 본 어머니는 저승에서도 편치 못 할 겁니다. 18살의 나이. 학생은 한 순간에 너무 많은 것은 잃었고, 너무 많은 것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하나뿐인 아들 손에 목숨을 잃은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또 하늘나라에서 힘들어 하겠지요. 길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몸이 되었을 때, 아들은 진정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기억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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