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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 곁을 떠난 세 명의 자유로운 여성

[취재파일] 우리 곁을 떠난 세 명의 자유로운 여성
최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세 분의 여성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일깨워 준 박병선 박사, 남편의 보호막에 안주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삶을 이어나갔던 다니엘 미테랑 여사, 그리고 아버지의 그늘을 부담으로 여기며 늘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했던 스베틀라나.

구 소련의 철권 통치자 스탈린이 '작은 참새'라고 부르며 지극한 사랑을 쏟아 부었던 스베틀라나. 그러나 그녀의 삶은, 철권 통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랑이었던 만큼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유대계 시나리오 작가였던 첫사랑은 스탈린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인연을 맺지 못합니다. 스탈린이 사망한 뒤, 1967년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며, 냉전시대 최대의 스캔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1970년 미국에서 새롭게 결혼해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가 했지만, 2년 만에 이혼하고 혼자만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1984년 전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소련으로 돌아가 국적을 회복했지만, 해체 직전의 혼돈이었던 소련에 적응하지 못하고 2년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은둔 생활에 들어갑니다. 평생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것은 아버지 스탈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고통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 받는 여인 중 하나인 다니엘 미테랑 여사 역시, 평생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지배에 항거해 1940년 17살의 나이로 레지스탕스에 헌신하면서 자유에 대한 추구를 시작했습니다.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고 미테랑 대통령과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한 남자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동지로서 늘 스스로의 영역을 잊지 않았습니다. 1981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사회당 열성당원으로 남편 미테랑이 아닌 사회당 미테랑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것입니다.

미테랑 여사의 자유로운 영혼은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뒤 활짝 꽃을 피웁니다. 일체의 인터뷰도 거부하고, 대통령이 연설할 때 연단에 함께 오르지도 않는가 하면 영부인이 됐지만 엘리제 궁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부인의 직위를 활용해 '프랑스 리베르테'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활발한 인권 활동을 벌였습니다. 쿠르드족의 인권탄압 상황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보여 지금까지 쿠르드 족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전에 테레사 수녀가 다니엘 미테랑 여사에게 자신의 묵주를 걸어주고 '자신과 함께 묵주를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테랑 여사의 자유로운 영혼이 마지막으로 빛을 발한 것은 1996년 미테랑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였습니다. 재임 중 일종의 금기였던 미테랑 대통령의 정부 팽죠 여사와 숨겨놓았던 딸 마자린을 장례식에 불렀던 것입니다. 가슴에 묻고 살아 온 불편한 진실을 터놓고 받아들인 것이죠.

미테랑 여사가 숨진 뒤 불과 몇 시간 뒤,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그 존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편안하게 자라났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 전쟁 직후의 척박한 풍토를 벗어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왔던 그녀.

   


학업을 마치고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는 1972년 도서관 서고에서 잠자던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그 동안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던 1455년판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빠른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직지 대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 병인양요 때 약탈당했지만, 그 존재 여부조차 몰랐던 외규장각 도서를 또 국립도서관의 서고에서 발견해냈습니다. 당시의 감동을 고 박병선 박사는 "백 년도 넘은 책을 처음 펼칠 때 번져 나오는 묵향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때 이후 박 박사는 일상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이 필생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고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가 생기자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사서였던 박 박사를 쫓아냅니다. 그렇지만 박 박사는 일반인의 신분으로 바뀐 1980년부터 매일 도서관에 찾아가 외규장각 도서의 열람을 요구했습니다. 모른 체 하던 도서관측에서 결국 외부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열람을 허용했고, 이후 10여 년 동안 박 박사는 외규장각 도서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반환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도 또 20여 년 동안 허공의 메아리였던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이 2011년 그 결실을 맺은 뒤 박 박사는 영원한 자유를 찾아 떠난 것입니다.

삼가 세 여성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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