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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외계층'에 대처하는 ‘인터뷰’의 자세

연탄공장과 달동네 취재기

[취재파일] '소외계층'에 대처하는 ‘인터뷰’의 자세
요즘 연탄이 인기랍니다. 월동을 준비하는 서민들이 날씨가 막 추워지는 이 때, 겨울을 날 연탄을 많이 사놓기 때문입니다. 또 고유가 시대에 연탄만큼 경제적인 에너지가 없다고 합니다. 약간 불편하기는 해도 하루 2천원이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기 때문에, 서민들에겐 이만한 버팀목도 없습니다.

#연탄공장 사람들

이런 광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서울 시흥동의 연탄공장을 찾았습니다. 서울에 남은 단 2개의 연탄 공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연탄을 떼어 가는 도소매업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면 연탄시장의 ‘활기’를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 것 너무 멋있어 보이는 데 왜 안하세요?” 설득을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소매업자분이 던지시는 한 마디. “우리가 연탄 배달하다 길에서 사람들이랑 부딪히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야, 연탄!’ 이렇게 불러요. 초면에 존댓말도 안 쓴다고요. 항상 무시당하며 살아. 그런데 방송에 얼굴 내밀고 싶겠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 솔직히 믿는 사람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이분들이 평생 지고가야 했던 차별의 시선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이 갑니다. 순간 어떻게 대응을 해아할지 막막해집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분들을 설득해 이야기를 듣고 화면에 담아내는 게 또 제 임무입니다. 남은 방법은 넉살 뿐입니다. “아니, 새벽에 이렇게 고생하시는 데 뭐가 창피하세요? 저도 새벽에 일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선생님 아들 뻘인데, 아드님 생각해서라도 좀 해주세요.”

연탄 공장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끈질기게 달려들어 인터뷰를 했지만, 제 직업적 본분을 위해 그분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것은 아닌지 고민이 앞섭니다. 방송에 나오면 그렇게 창피하시다는 데, 그것도 공인도 아닌데, 마이크를 들이대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물론 제가 기자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겁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달동네 사람들
이번엔 정반대의 경우입니다. 연탄공장 취재를 끝낸 뒤 찾아간 곳은 서울 중계동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입니다. 연탄 자원봉사자들이 연탄 기부를 하는 현장이었죠. 홀로 사는 독거노인 분들, 생활이 극도로 어려운 장애인 분들이 많이 사십니다. 연탄을 떼어 가시는 분들도 인터뷰를 하기 싫어하시는데 과연 이 분들께서 인터뷰를 잘 해주실까 고민이 앞섭니다.

올해로 연세가 78살이라는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연탄공장에서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연탄 줘서 고맙다는 말만 좀 해주세요.”라고 저자세로 섭외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 하십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목 놓아 우십니다. “사는 게 너무 막막했는데 얼마나 고마워요.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 대장에 뭐가 생겼대요. 수술해야 한다는데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해서 뭐하나 싶어.” 가슴에 맺혀있는 말들을 쏟아 내십니다. 인터뷰에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언뜻 당황도 했습니다. 인터뷰를 마다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잘해 주셨으니까요. 그렇게 인터뷰를 담아갔습니다.

                  

나중에 오면서 생각해보니 카메라가 앞에 있어도 지금 인터뷰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사연이 뉴스를 통해 그대로 나갈 수도 있다는 것도요. 결정적으로 제가 기자가 아니라 연탄 기부자로 착각하신 것 같았습니다. 정말 그랬다면, “할머님, 저는 기자고요, 인터뷰 하시는 거 방송 나가는 거에요” 이렇게 설명을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인터뷰 당시로 돌아가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할머니의 감정선을 끊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직업적 욕심 때문입니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취재할 때 맞닥뜨리는 정반대의 사람들 -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과, 방송에 나가는 것이 어떤 건지 고민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 - 모두 기자에게 숙제를 던져줍니다. ‘취재윤리’라는 말까지 불러온다면 과장일까요. 기자의 직업적 본분과 이들의 처지가 충돌할 때 아직도 고민이 앞섭니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후자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소외계층’에 대처하는 ‘인터뷰’의 자세. 과연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쉽사리 정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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