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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생동물의 비명..죽음의 고속도로

[취재파일] 야생동물의 비명..죽음의 고속도로
서해안 지역을 갈 때면 늘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를 이용합니다. 2년 전 시원스럽게 뚫린 이 도로는 다른 고속도로처럼 국도에 비해 운전하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 가량 단축시켰습니다.

시간이 금인 직업 특성상 자주 이용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개통된 뒤부터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도로위에 흉칙한 핏자국이 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이른바 '로드킬'(road kill) 흔적입니다. 도로 주변에 야생동물 출입을 막는 철조망 울타리도 만들고 이동통로도 설치돼 있지만 야생동물의 희생은 계속 됐습니다.



대체 도로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궁금증과 함께 로드킬 실태와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21일 오전 당진방면으로 출동, 사고현장을 찾으려 눈을 부릅뜨고 달렸습니다. 마침내 수덕사IC에서 면천 구간에서 핏자국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습니다. 1차로 주변에 선명하게 남은 로드킬 흔적으로 보아 분명 사고가 난 지 24시간 이내임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핏자국 흔적만 있고 무슨 동물이 피해를 당했는지 사체가 없어서 알 수 없었습니다. 도로공사 직원들이 수거해 치운 것이 확실했습니다.

혹시나하고 갓길 주변을 세심하게 살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게 웬일? 갓길 아래 언덕 풀 속에 너구리 사체가 폐기돼 있었습니다. 훼손되지 않은 머리와 다리 일부를 통해 너구리임을 쉽게 알수 있었습니다.

몸통 쪽은 사고 충격으로 심하게 훼손돼 끔찍한 모습이었죠. 사체가 발견된 장소와 훼손 정도로 보아 도로 위에 생긴 핏자국 흔적, 즉 로드킬 피해 동물은 다름 아닌 너구리 였습니다. 취재진이 4일간 현장 조사결과 확인한 로드킬 사례는 총 7건, 종류별로는 고라니 3마리, 너구리 4마리였습니다. 취재 때 마다 평균 2마리꼴이었습니다.

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당진구간에서 로드킬로 희생된 동물은 모두 95마리. 고라니 78, 너구리 16, 살쾡이 1마리가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올해도 지난 9월까지 60마리나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도로공사는 "신설도로 이기 때문에 동물들의 적응기간 중이어서 로드킬이 빈발하는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주 원인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총 91.6km 구간 중 대부분이 산악지대를 통과하고 있지만 동물들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 설치는 23.99km, 설치율은 19.7%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울타리가 설치된 곳에도 수로는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우기 때 고속도로 위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로 높이는 30-40cm, 어미 고라니를 제외한 너구리 등 체구가 작은 동물은 충분히 들락거릴 만한 통로입니다. 울타리가 수로 위를 지나갔지만 정작 수로를 막아 놓지 않아 동물들의 출입을 허용한 셈입니다.

고속도로 건설 당시 환경영향평가까지 받아 설치했다는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모두 4개의 이동통로가 있는데 3개는 육교형이고 나머지 1개는 터널형 구조였습니다. 육교형 구조 중 당진읍에 위치한 이동통로는 농기계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산길 바로 옆에 만들어놨습니다. 더구나 한쪽 출구는 도로를 내려고 산을 깎아낸 절개지 중간쯤에 걸쳐 있어서 사실상 동물길을 끊어 놓은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3분기 동안 CCTV 확인결과 이곳에서는 단 1마리의 동물도 촬영되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지하를 뚫어만든 터널형 이동통로에서도 촬영된 동물은 없었고,그나마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모니터된 37건의 동물 촬영은 공주 신풍, 우성 두 곳이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신풍 이동통로에서 33건이 찍혔습니다.  야생동물 이동통로 위치 선정에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관찰 자료입니다. 특히 91.6km 중 당진-대전방면 53km-68km까지 15km 구간에 총 4개의 이동통로 중 3개가 집중돼 있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 도로공사는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동물의 사체 처리도 문제였습니다. 차에 치여 만신창이가 된 동물 사체는 바로 수거해 쓰레기봉투에 담아 폐기처분해야 하지만 실정은 달랐습니다. 취재기간 내내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는 도로갓길 옆 언덕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심하게 부패돼 다리와 가죽만 남은 경우도 심심찮게 목격됐습니다.

고속도로나 국도의 로드킬은 단지 야생동물의 목숨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칫 2차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동물을 피하려고 핸들을 꺽는다는지, 아니면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마침 뒤따라오는 차량이라도 있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한 상황이 그려집니다.

야생동물의 길을 끊고 사람의 길을 낸다면 야생동물도 이동할 수 있는 통로 확보나 우회로 건설은 필수입니다. 공생공존해야하는 자연의 질서를 파괴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원인 제공자에게 돌아온다는 평범한 이치를 무시하는 모습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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