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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포격 1년…다시 찾은 연평도

[취재파일] 포격 1년…다시 찾은 연평도

일 년 전, 연평도로 가는 길은 참 추웠습니다. 바람이 매서웠고 파도가 어찌나 거센지, 멀미가 지독해 약을 먹고 배를 탔는데도 정말 속이 안 좋아 혼났습니다. 몸만 추운 게 아니었죠. 포탄이 떨어졌다는 그 섬에 들어가는 제 기분도 최악이었습니다. 포격 이후 집을 떠나 찜질방에서 생활하던 연평도 주민들의 그 처참한 기분에는 비할 바도 안 되겠지만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뱃길을 따라 달려 소연평도를 지나 대연평도에 닿았습니다. 12월이었고 그때 서울도 참 추웠는데, 연평도는 서울과 비교도 안 되게 정말 추웠습니다. 먼저 연평도에 들어갔다가 나온 동료들이 정말 추우니 무조건 옷을 두껍게 가져가라고 충고했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선착장을 지나 민박집에 짐을 풀고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주민이라고는 민박집 사장님들밖에 안 보였습니다. 섬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기자였고, 기자 만큼 많은 건 주인 잃은 개들이었습니다. 섬에서 9일 동안 먹고 자고 일하면서 제일 많이 만난 게 이 개들인데, 덩치가 보통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주인이 없으니 지저분하게 쓰레기통만 뒤지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포탄이 떨어진 집은 천장과 벽면이 날아가서 집 안이 다 드러나 있고, 해변가에 쌓아놓은 콘크리트 담장에는 포탄이 박혔다가 떨어졌는지 구멍이 뻥 뚫려있었습니다. 식당도 가게도 다 문을 닫아서, 섬에 하나 있는 편의점에 물건이 들어오면 그야말로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진열장이 텅빈 편의점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연평도는 그랬습니다. 많이 아팠고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일년 뒤, 다시 연평도를 찾을 때 그 섬이 얼마나 건강해졌을지, 그땐 상상도 못했습니다.

일년이 지나고, 지난 15일 다시 연평도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엔 떠밀려 간 게 아니라 취재를 하고 싶어서 갔습니다. 연평도 아이들이 두 달 전부터 클래식 악기를 배우고 있는데, 이 음악치료가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분 탓이었을까요. 일년 전 그때보다 연평도로 가는 길은 따뜻했고 바다도 잔잔했습니다. 연평도로 가는 길이 일년 전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섬이어서 확실히 뭍보다 춥긴 하지만, 연평도도 그때처럼 그렇게 싸늘하지 않았습니다. 차가 많았고, 사람도 많았습니다. 민박집 사장님을 만나 차를 얻어타고 마을로 들어갔더니, 일년 전에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연평도에도 중국음식점, 감자탕집이 있고, 피자와 치킨가게도 다 있더군요.

주민들이 돌아온 연평도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온 초등학교는 생기가 돌다 못해 왁자지껄 시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는 교실, 아이들이 달리는 운동장,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강당. 모든 공간이 사람의 온기로 꽉찼습니다.



무너진 집들도 복구가 됐습니다. 곳곳에 막 지어진 것 같은 깨끗한 외관의 건물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직 다 복구가 안 된 곳은 주인을 기다리며 기둥을 세우고, 담을 쌓고,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포격 1주기 입니다. 기념하고 싶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 일인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연평도 주민들은 그때의 충격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상처를 지우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들이 온전히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그들에게 약속했던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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