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UC 데이비스와 여의도의 최루탄

한국 국회의 최루탄 소동을 바라보며…

[취재파일] UC 데이비스와 여의도의 최루탄

어제 한국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나라당의 단독 표결에 의해 통과됐습니다. 정치부에서 취재하던 시절에는 그 때 그 때 제가 담당했던 정당의 논리에 어느 정도 함몰이 됐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대단히 객관적으로 보이더군요. 그저 예상됐던 결과 그대로 나온 듯합니다. 미국 의회가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 맞춰 한미 FTA 이행법안을 통과시킨 만큼 한국 집권당도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는 했어도 한나라당의 단독처리를 온 몸으로 저지할 의사는 애시당초 없어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역대 국회에서 집권당의 단독처리는 늘 그랬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몸을 날리고 의사봉을 숨기고, 단상을 점거했어도 단독 처리되든, 날치기 되든 결국 집권당의 의지대로 됐습니다. 몸싸움에서도 다수결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통분의 눈물을 흘리고, 여당 의원들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습니다. 여당의 단독처리는 이후 선거 때가 되면 여당에 부담이 되고, 목놓아 "단독처리 결사 저지"를 외치던 야당에게는 호재가 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여와 야는 위치를 바꿨어도 똑같은 행태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 맞습니다. 그런 정치권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맞습니다. 그런데 항상 간과되는 부분은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번에는 여당과 야당 의원들 중 상당수가 최대한 물리적 충돌을 막아보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고, 여야 지도부 또한 그들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 점도 우리 국회가 달라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대답은 일단 미뤄두고 어제 한국 국회에서 터진 최루탄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시각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짧게 말하면 신이 났습니다. 방송 기자들끼리 하는 말로 '그림'이 되다 보니 방송은 물론 신문사 홈페이지 마다 한국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올려놨습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를 살펴봤더니 현재 시점에서 137명이 '좋아요'를 눌렀더군요. 수많은 한국 국회 관련 기사 가운데 뉴욕타임스 기사가 유독 재미있었던 것은 얼마전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UC 데이비스에서의 최루액 살포와 연관 지은 점 때문입니다. "최근에 시위대를 통제하기 위해 최루액을 살포했던 것이 관심을 끌었었는데, 화요일은 입법 과정에서 최루탄이 사용된 최초의 날이 됐다."는 내용이 첫 문장이었습니다.
 

South Korea pol uses tear gas over U.S. trade deal

                   


 Whew! There is at least one legislative body more dysfunctional than the U.S. Congress.

사진 밑에 영어 기사가 폴리티코 기사의 첫 문장입니다. "휴, 미국 연방의회보다 더 못한 국회가 한 곳은 있다."정도 될 것 같네요. 최루탄을 터뜨린 국회의원 사진 한 장으로 한국 국회의 수준이 미국 국회보다 못하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하긴 똑같은 FTA를 안건으로 해서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했던 기억이 미국인들에게도 아직 생생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24시간 뉴스만을 내보내는 CNN은 두 개의 동영상을 띄워 놨습니다. 하나는 차분하게 '한국 국회에서 터진 최루탄'이라는 제목이고, 또 하나는 '이 동영상을 보세요'라는 고정 코너입니다. 앞의 동영상은 "한국 국회의원 중 한 명이 한미FTA 비준 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의사당 안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는 나름 차분한 뉴스 리포트 영상물이고요, 두 번째 것은 요즘 한국 방송사들도 아침 뉴스 때 고정 코너로 내보내는 일종의 '인터넷 동영상'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그리고 카메라에 포착된 재미있는 동영상만을 모아 놓은 곳인데요, 결국 한국 국회에서 터진 최루탄이 미국인들에게는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죠.

제가 있는 워싱턴의 주요일간지(정확하게는 지역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는 아예 방송사처럼 뉴스 동영상을 인터넷 판에 올려놓았습니다.  AP가 계약을 맺은 한국의 통신사 연합뉴스TV의 동영상을 그대로 인용해 내보내고 있습니다. 한국 기자들의 한국어 방송이 그대로 나오더군요.

이 정도면 더 살펴 볼 것도 없을 것 같네요. 한국 국회에서 터진 최루탄은 미국 언론에게는 재미있고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한국 국회의 낙후된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 기사마다 끝부분에는 "한국 국회에서 몸싸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얼마 전에는 해머와 전기톱까지 등장하기도 했다."는 대목이 꼭 들어가 있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지적이 맞으면 수긍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미국 국회에서는 한국 국회에서처럼 최루탄은 안 터지고, 몸싸움도 없고 , 해머나 전기톱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배워야 한다면 배워야 합니다. 미국 의회가 소수당의 발언권을 최대한 수용하고(의사진행발언이라고 해석되는 필리버스터 등) 다수당이 참고 참다가 자기네가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의석수를 전체 의석의 60%로 정해서 (상원의 경우 전체 100석 가운데 60석) 일부 야당 의원들의 협조를 얻도록 해놓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미국 의회에서 야당은 최대한 자기네 주장을 알리며 시간을 끌 수 있고, 미국 국민들은 그런 야당의 주장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국회를 우리가 무조건 부러워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명시적으로 정치 때문에 떨어진 적은 없지 않습니까? 지난 여름, 전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던 미국 국가 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떨어진 결정적 이유가 바로 경제의 발목을 잡은 미국 정치권이었습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경제력을 있는 그대로 비교할 것도 아니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정치권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기대수준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안 나온 것도 아니고 말이죠.

다만 몸싸움이라는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미국 의회도 그다지 나을 게 없습니다. 한국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지기 몇 시간 전 미국 의회 안에 구성된 슈퍼위원회는 짤막한 성명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지난 8월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선을 증액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됐었는데, 당시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하며 구성한 것이 슈퍼위원회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최소한 1조 2천억 달러 감축하는 방안을 여야가 합의해서 내놓으라고 만들어진 위원회죠. 그로부터 석달 동안 민주-공화 6명씩 12명으로 구성된 슈퍼위원회는 토론을 거듭했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무한정 토론은 계속했는데 합의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어제 슈퍼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의 첫 문장은 "활동시한까지 국민들에게 내놓을 만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질적 활동시한이 대여섯 시간 남았는데도 일찌감치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런 발표의 이면에는 미국 경제를 볼모로 내년 대선에 승부를 걸겠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국민의 살림살이가 달려 있는 중대한 사안조차 대선의 승부수로 생각하는 미국 정치권의 행태는 지난 8월 신용등급 하락의 충격을 전혀 교훈으로 삼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몸싸움이 없다고 미국 정치가 토론 끝에 어떤 식으로든 절충안을 마련한다는 논리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된 일종의 착시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언론기사 중에는 "슈퍼위원회의 실패는 반 월가 시위대의 승리"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뉴욕을 출발해 2주 동안의 행진 끝에 오늘 워싱턴DC에 도착한 반 월가 시위대는 "부패한 미국 정치 시스템 안에서 용기 있게 일어나 ‘아니오’라고 외칠 사람, 평범한 미국인들을 위해 싸워줄 사람이 없다. 월가가 워싱턴까지 소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 의회는 대형은행과 대기업, 부자들만 대변하고 있다. 바로 'OCCUPY'(점령하라) 시위가 매일 매일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최루탄이 터진 한국 국회의 모습을 외국에서 보는 심정은 편하지 않습니다. 한 수 아래로 한국 정치권과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더더욱 불편합니다. 다만, 그런 미국인들의 냉소적인 반응과 평가에 우리가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미국 정치 수준 또한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두 달 이상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 월가' '반 워싱턴' '반 부유층'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권이 최대한 자기들이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헌신하도록 하되, 물리적 충돌은 최소화하도록 하는 일이지, 외국인들의 평가를 잣대로 해서 도매금으로 우리의 정치권을 매도하고 짓밟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야당 의원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아, 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라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의회제도의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고, 현 상황에서도 가능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의원들을 선출하는 데 집중할 일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금방 또 다가옵니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으로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19대 국회에서는 지금보다 더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