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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능시험, 언제까지 이렇게 유별난 날이어서야...

[취재파일] 수능시험, 언제까지 이렇게 유별난 날이어서야...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관공서들이 출근시간을 늦추는 날이 있습니다. 이 날은 항공기 이착륙이 하루 2번 특정 시간 동안 금지됩니다. 학교 주변 2백 미터 안쪽으로 대중교통을 제외한 차량의 운행이 통제됩니다. 학교 건물 옆에 구급차 2대가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는 날. 이날은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입니다.

지난 10일 있었던 수능 시험날, 저는 새벽부터 서울 서초동의 서울고등학교 앞에 있었습니다. 아침뉴스 시간에 있는 중계 리포트를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수능 한파'가 없어서 한결 수월했지만, 역시 시험이 치러지는 교문 앞은 특유의 위압감이 느껴지더군요. 잔뜩 긴장한 남학생들 (서울고등학교는 남학생 고사장입니다^^)의 표정을 보니 저까지 긴장되는 것 같았습니다.

                 



여하튼 이 날 하루만큼은 대한민국의 모든 규칙은 수능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출근시간 늦추기부터 듣기 시간 소음이 발생할 모든 상황 차단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제가 그랬듯이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케이블 뉴스 채널들까지 모두 새벽 0시를 기해 '수능'이야기만 합니다. 라디오 뉴스의 경우 언어영역 한 교시가 끝나고 외국어 영역 한 교시가 끝나고 할 때마다 "00 영역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전국 시험장에선 별 탈 없이 시험이 진행됐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내 아이가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내가 아니더라도 모두들 이 상황을 당연히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감수해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아마 수능이 12년의 학습기간에 대한 평가라는 사실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대개 중진국 이상 국가의 교육과정이 그렇듯 연계 교육입니다. 초등 6년 과정이 뿌리가 돼 중학과정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중학과정을 기반으로 고교과정을 배웁니다. 다시 말하면 지난 10일 하루 동안 7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자신의 12년을 채 20장도 안 되는 종이를 넘기며 평가받은 겁니다. 평가 결과는 당연히 '어느 대학에 진학하나?'로 이어집니다. 수험생 자녀를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어머님 한 분께서 한 말이 기억납니다. "오늘 모든 게 결정되잖아요."

뭐가 결정되기에 모든 게 결정될까요. 수능 점수는 결국 대학 입학 결과라는 말인데...                

결국 모두가 양보하고 감수하는 수능날은, '대학 이름' 이 갈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대학이름이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란 거겠죠. 그래서 자연스레 모두가 참고 감내하는 날이 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한번 잘못 붙은 이름표가 너무도 길게 따라 붙는 것을 우리 부모들과 우리가, 그리고 우리 동생들이 보아오고 경험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 무게로. 수능 시험시간 도중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여느 수능날처럼, 교문 앞에는 수험생들의 후배들이 잔뜩 나와 있었습니다. 새벽 4시부터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기다렸답니다. 수능시험장으로 아이를 보내는 어머니들은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찰 순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각한 수험생을 교문 앞에 내려놓습니다. 전 12년 공교육을 받던 때나 지금이나 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광경 가운데 이날의 광경이 가장 특별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외신 취재진들이 신기한 듯 이 광경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아갔겠죠. 유별난 날이죠.

11월 이날이 모두가 응원하는 날이지만, 이렇게 까지 유별난 날이 안 되는 날. 그날이 올 수 있을까요? 12년을 정리하는 뜻 깊은 날이지만 '인생을 결정하는 날'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사라지는 날. 공항 부근 시험장을 빼고는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날. 수험장인 학교 옆에 구급차가 계속해 대기할 필요가 없는 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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