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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우리 옛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 전

터럭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흰머리는 물론 나이든 인물의 검버섯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흔히들 동양화가 정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전통 때문에 사실적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시죠. 하지만 우리 옛 초상화를 보면 이런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초상화는 바로 그 인물과 마찬가지라는 생각 때문에 터럭 하나까지도 똑같이 그리려고 했는데요, 그 결과 이런 사실적인 초상화가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사실적인 표현은 유교 사상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송나라 시대의 주자학자인 정이(程頤)형제가, 조상의 모습을 똑같이 그리기 힘드니까 이름을 적은 위패를 모시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남깁니다. 일호불사 편시타인 (一毫不似 便時他人)이라고 말하는데요,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이 문구를 다르게 해석해, 정말 터럭 하나라도 똑같이 그린 것이죠.

부모, 조상의 초상화를 그 인물과 마찬가지로 존중했던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초상화를 그리는 비용이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아무나 그릴 수도 없었습니다. 공을 세우거나 큰 뜻을 지닌 신하와 백성의 초상화가 제작된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었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 조선의 대 학자 송시열,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진 이항복과 이덕형, 절개와 충의를 인정받아 사후에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논개 등의 초상화는 그런 영광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시험에 좋은 성적을 거둔 유생들의 초상화도 있습니다. 후배 선비들도 굉장한 자극을 받았을 겁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 초상화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았기 때문이죠.

왕 자신의 초상화도 신경 써서 제작되었습니다. 위엄이 느껴질 수 있게 사람들이 올려다 볼 정도의 크기로 그려졌습니다. 세밀하지만 부드러운 얼굴의 표현이 인자한 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의 초상은 어진이라 불렀는데요, 선왕의 어진을 대할 때도 왕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화재로 선대 왕의 초상의 소실되었을 때 왕과 신하들이 3일간 곡을 하며 슬퍼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의 초상화를 보다 보면 색의 표현이 굉장히 부드러운 것에 놀라게 됩니다. 옛날에는 화학적인 물감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자연스러운 피부색이 그려졌을까요? 비밀은 바로 한지의 뒷면에 색을 칠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색 표현에 있습니다. 이를 배채법(背彩法)이라고 합니다. 한지의 물이 번지는 성질을 이용해 뒷면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입니다. 태조 어진의 온화한 얼굴빛도 이렇게 그려졌습니다.

터럭 하나하나 똑같이 그리려는 전통과 더불어 초상화 속에 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전통도 있습니다. 전신사조(傳神寫照). 아무리 세밀하게 그려도 완전히 똑같은 재현은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이 담겨 있다면 말이 달라집니다. 초상화 속에 인물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 더욱 그 인물에 가까이 다가간 그림일 것입니다.

윤두서 자화상이 뿜어내고 있는 강렬함은 그의 정신이 오늘도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강한 눈빛을 가진 얼굴이 화폭 중간에 떠있어 굉장히 파격적으로 보입니다. 사실 일부러 몸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꼿꼿한 정신이 살아 있는 얼굴 뒤에 은은하게 옷의 형태가 그려져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엑스레이와 적외선 촬영 기술로 윤두서 자화상의 숨어 있는 몸을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몸을 강조할 생각은 없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보통 약간 측면을 향하는 초상화의 방식에서 벗어나 정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윤두서 초상. 진사에 합격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꼿꼿한 선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정신을 담아내는 옛 선조들의 초상화가 어렵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서양의 과학적이고 입체적인 그림이 굉장히 사실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양 문화가 더 일찍 발전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다는 분 계시지 않나요? 사실은 사상의 차이가 그림의 차이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루벤스가 그린 조선인의 모습은 우리의 초상화 전통과 많이 다릅니다. 사실감은 인물을 입체로 보기 때문에 생깁니다. 분명 터럭 하나하나 그려낸 우리의 옛 초상과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겉모습 속에 정신을 담아내는 그림을 그리려고 애썼던 점 만큼은 같아 보입니다. 안토니오 꼬레아라고 알려진 루벤스 초상화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 갔다가 네델란드 무역관에게 발탁되어 서양에서 활동했던 조선의 전직 관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벤스의 이 초상화를 통해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인식하고 표현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워낙 사실적으로 초상화를 기록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도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은 서로 닮는다고 하는데요, 옛 초상화 속의 가족들도 신기하게 닮아 있습니다. 부부도, 아버지와 아들도 초상화를 통해 살아 있을 당시의 비슷한 외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사진의 영향으로 더욱 똑같은 초상화가 제작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려진 우리 옛 초상화는 바로 우리 선조들의 모습입니다. 몇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얼굴’들 안에는 정신의 유산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짐작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취재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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