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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을 택한 탈북자들…

[취재파일] 일본을 택한 탈북자들…
탈북한 뒤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는 2백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매년 탈북자 10여 명이 일본에 정착하는데 최근 그 수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6, 70년대에 북송됐던 재일 동포의 자녀들이거나 먼 일가 친적이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토요일 밤 이들 탈북자 가운데 한 부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청진에서 고기잡이 배를 타다 지난 2005년 탈북한 뒤 중국을 거쳐 일본에 왔다는 이 30대 부부에게서 북한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 북한 주민들 가운데 중국에서 밀수된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 휴대전화로 수시로 외부 세상과 통화를 한다는 겁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도 대단해서 주민의 상당수가 각종 드라마를 몰래 돌려가며 본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불빛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한 뒤 2, 30 부작 드라마를 밤을 새워 보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복제된 DVD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학교에서도 대화에 끼기 어렵기 때문에 DVD 플레이어를 사달라는 북한 청소년들의 성화도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일례로 남편의 경우 최근 북에 있는 여자 동창생의 전화를 받기도 했답니다. 당 간부의 부탁인데 제5공화국 드라마를 보내줄 수 없냐고 부탁하는 전화였다고 하더군요. 적발되면 당장 사형을 받을 일인데 당 간부가 목숨을 걸고 드라마를 보려하는 것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얼마전 목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표류해 왔던 탈북자 일가족의 탈출 이유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을 동경해서라는 보도가 나왔는데 한류 붐이 북한에도 불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탈북자들이 북에 있는 지인들과 이처럼 자유롭게 통화를 하고 있고 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중국에 있는 브로커들을 통하면 백만 엔, 우리돈 천5백만 원이 있으면 가족을 탈북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들에겐 일본 정부로부터 야찡, 즉 월세로 5만 엔이 지급되고 또 생활비로 13만 엔이 지급돼 당장 먹고 살 걱정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일본어였습니다. 탈북자 중 50대 여성은 어머니가 일본인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일본어를 읽고 쓰기가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다행히 일본의 한 자원단체가 지난 6월부터 무료 일본어 교실을 열고 있는데 이곳에 등록해 배우고 있는 탈북자가 15명 정도라고 하더군요. 물론 힘든 상황 속에서 매일 이곳에 모두 모일 수 있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취재진이 갔을 때는 5명 정도가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한국행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일본에 연고가 있다는 것이지만 다른 탈북자들을 통해 한국에서 겪은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후 마음을 접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에게 바라는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한국 정부가 자신들에게까지 신경을 써 줄 겨를이 있겠느냐며,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에게 지원해 주는 것만 해도 감사드린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탈북자 수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제3국을 택한 탈북자들에게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정말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같은 민족, 같은 동포로서 이들을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은 취재를 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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