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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덜미 잡힌 '열쇠의 제왕'

[취재파일] 덜미 잡힌 '열쇠의 제왕'

'열쇠 7개로 모든 문을 열 수 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신비의 열쇠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열쇠 7개를 이용해 주택 백 여 곳의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가 물건을 훔친 남성이 있습니다. 45살 김 모 씨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해당 열쇠와 같은 모양을 가진 자물쇠에만 가능한 이야기였는데요, 이 자물쇠는 이른바 '멀티' 자물쇠로 불립니다. 해당 자물쇠의 열쇠 조합은 백 여 가지가 있지만 그는 이 일곱 개의 열쇠로 대부분 열 수 있었습니다. CCTV가 없는 곳만 골라서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가 금품을 훔친 뒤 문을 단단히 다시 잠그고 나오니, 서울과 안성 등 수도권 일대에서 2년 넘게 절도 행각을 벌이면서도 절대 덜미를 잡히지 않았던 겁니다. 그의 신기한 손기술 얘기는 이미 많이 나왔으니 어떻게 그가 훔친 귀금속들을 넘겼는지, 어떻게 그가 잡히게 됐는지, 그 얘기를 써보려 합니다.

피의자 김 씨는 한 달에 평균 7, 8회 범행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그렇게 금품을 훔쳐 오면 공범 44살 최 모 씨가 그 가운데 귀금속을 받아서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장물을 처분했습니다. 처분할 때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전자저울과 확대경 등 전문장비까지 갖췄습니다.

게다가 반지 등에 박혀 있는 보석들은 대부분 빼낸 뒤 금만 모아서 처분했습니다. 금만 모아서 업자와 거래를 해야 어느 정도 가격 예상이 가능하고, 그래야 거래할 때 속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모은 금을 한 봉지에 약 10돈씩 담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들어가 그 날의 시세를 확인한 뒤에 물건 거래를 했습니다. 그렇게 담은 봉지를 들고 서울 일대를 돌면서 금을 넘겼는데 의심을 덜 받기 위해서 한 번 갔던 금은방은 다시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 씨는 숨고 공범 최 씨만 혼자 들어가 물건을 팔았다고 합니다.

한 번 갔던 금은방을 다시는 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많은 금은방이 관련됐다는 걸 짐작할 수 있으시겠지요? 경찰의 계산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김 씨는 한 번 처분을 할 때 최소 4개 봉지를 처분했다고 합니다. 2년 2개월 동안 한 달에 두세 차례, 한 번에 최소 4곳이면 장물을 처분한 업소만 3백여 개에 이른다는 게 경찰의 추산입니다. 실제로 경찰은 금은방 업주 51명을 입건했고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김 씨의 2년여 간의 범죄도 결국 이 장물 처분 과정에서 덜미가 잡혔습니다. 경찰은 올 6월 초  최씨로부터 반복적으로 금은방에 처분하려는 귀금속이 나오고 있고 이것들이 장물로 의심된다는 복수의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이에 따라 내사에 착수한 경찰은 최 씨를 자진 출석시켰습니다.

그를 추궁하자 최 씨는 절도범 김 씨가 도박 하우스에서 나오는 물건이라며 처분을 부탁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절도는 아니라고 답을 한 거죠. 게다가 정확한 피해품과 피해자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최씨를 내보낸 뒤 이후 약 다섯 달 동안 잠복과 미행을 계속했습니다.

김 씨의 대포폰 번호를 확인한 경찰은 휴대폰 실시간 위치추적과 통화내역 수사를 통해 김씨의 행적을 차분히 밝혀냈고 이미 발생했던 사건에 대한 피해품 조회 등을 통해서 유사사건임을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사 사건들 사이에 김 씨가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 결과 경찰은 김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4일 최 씨를 미행한 경찰은 장물 처분을 위해 최 씨와 접선하는 김씨를 붙잡았습니다. 장물처분 사실이 확인되자 김 씨는 범행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결국 '열쇠의 제왕'은 붙잡혔지만 아직도 전국에 이 멀티 자물쇠들을 쓰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장은 그 자물쇠를 설치하신 분들이 추가 자물쇠를 다시거나 하는 방법 밖에는 범죄 예방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문제는 자물쇠 업계가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경찰은 이 자물쇠가 다양한 업체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외국 자물쇠의 '복제품'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물쇠가 정교하게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피의자 김 씨도 절대 열지 못하는 '멀티' 자물쇠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거죠. 다른 열쇠로 쉽게 열리는 자물쇠. 이게 어디 자물쇠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면 사람들은 결국 불안함에 등을 돌릴 겁니다. 더 안전한 자물쇠를 만드는 일. 돈은 조금 더 들더라도 그것이 업계를 지키는 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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