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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원님, 개그는 개그일 뿐!"

[취재파일] "의원님, 개그는 개그일 뿐!"

여자 아나운서를 성적으로 비하한 혐의로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결국 한나라당에서 출당을 당한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어제 "개그맨 최효종을 모욕죄로 고소했다"고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이유는 지난달 2일 방송된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에서 '진로상담사 일수꾼'으로 출연한 최 씨의 대사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되는데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돼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역을 개통해 준다든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구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요."

강 의원은 이런 말들이 국회의원에 대한 소위 '집단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집단 모욕죄'는 아나운서들의 강 의원에 대한 모욕죄 형사고소 사건 1, 2심 판결에서 최초로 인정된 바 있다고 강 의원 측은 설명했습니다.

즉, 강 의원이 최 씨를 고소한 건 본인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일종의 '시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인 본인이 여대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나운서 집단을 성적으로 비하한 것이 모욕죄에 해당한다면, 개그맨이 국회의원 집단에 대해 정치 풍자를 한 것도 모욕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본 겁니다. 이게 상식적인 사고인지, 국회의원이 이래도 되는 건지,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다만, 최효종 씨가 앞으로 국회의원을 풍자할 개그거리가 하나 더 생긴 건 확실해 보입니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강 의원보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비결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유익할 거 같습니다. 정치판이 코미디가 되다 보니, 정말로 개그와 정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자꾸 나오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요즘 'TV프로그램 기획제작'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여기에 개그콘서트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이 나와서 소개해 드립니다.

"개콘이 개그야나 웃찾사보다 잘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사회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있다는 의미는 갈등이 있다는 것이고, 갈등이 있다는 의미는 비록 웃으면서 보지만 생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남보원', '홈쇼핑', '동혁이 형', '왕비호', '두분토론', 그리고 '사마귀 유치원'까지, 개콘에는 사회갈등 자체를 소재로 삼거나 평소 사람들이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선사하는 코너가 유독 많았습니다. 이 PD의 제작론에 따르면, 시청자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경쟁심을 느끼기 때문에 누군가 남이 비난당하는 걸 보기 좋아할 뿐더러,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존 정보를 얻기 때문에 단순히 웃기는 개그보다는 '풍자'가 더 인기가 좋고 장수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본능을 자극하는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나의 '개콘'에 대한 해석이다.… 정치는 고난도의 생존 전략 게임이다. 정치는 인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인간 갈등을 조정한다. 이런 정치를 풍자하는 것은 생존과 갈등을 묘사하는 것이기에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미성숙한 결과다. 개그나 풍자를 웃음의 소재로 보지 않고, 현실 그 자체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풍자는 그저 풍자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 풍자를 심판할 수 있는 건 '시청자' 뿐입니다. 풍자가 재미없거나 현실성이 없다면 채널을 돌리면 그만입니다. 풍자를 현실의 심판대에 세우려는 것 자체가 진짜 '코미디' 아닐까요. 아니, 정말 모욕당했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본인 소송에 도구로 사용하려고 제3자인 개그맨을 끌어들였다면 '코미디'가 아니라 차라리 '비극'에 가깝겠죠. 강 의원은 어제 블로그에 "정말 최효종을 모욕죄로 고소해볼까요? ㅋ"라고 장난하듯 썼지만, 최효종이라는 개인은 얼마나 황당하고 무섭겠습니까.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쯤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오만함마저 느껴집니다.

확인 결과, 강 의원이 오늘(18일) 아침 8시 50분쯤 남부지검에 최효종 씨에 대한 고소장을 정말 접수했다는군요. 이번 일로 '애정남'과 '일수꾼'의 통쾌한 입담이 TV에서 혹 사라지거나, 순화되지 않기를 팬으로서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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