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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의 첫 컬렉션…컬렉터가 되는 방법

[취재파일] 나의 첫 컬렉션…컬렉터가 되는 방법

돈 한 푼 안 들이고 미술작품 내 것으로…

권란 기자 harasho@sbs.co.kr

작성 2011.11.17 13:50 수정 2013.10.29 21: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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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에게 미술작품은 '부자'들만의 '취미'이거나, 혹은 '재산' 정도로 여겨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나오는 미술 뉴스는 '누구의 작품이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했다'느니, '재벌가에서 미술작품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술작품은 비쌉니다. 특히 누구나 알만한 작가의 작품들은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피카소의 1932년 작품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은 지난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세계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그 가격은 무려 1억 650만 달러, 우리 돈으로 따지면, 1180억 원에 이릅니다.

국내 작가의 작품은 물론 그보다는 훨씬 낮은 가격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만만치 않습니다. 박수근 작가의 1950년대 후반작으로 전해지는 '빨래터'는 지난 2007년 서울옥션에서 45억 2천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서민들은 평생 모으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미술을 좋아하다 보면, 매일 곁에 두고 보고플 정도로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작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수천만 원, 수억 원에 달하는 가격이면 그냥 전시에서 보고 마음에 담아 가는데 그치겠죠. 하지만, 모든 작품이 다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닙니다.

저도 워낙 미술을 좋아하는데다, 미술을 담당하면서 자주 전시를 보러 다니게 되니, 전시장을 떠나도 눈앞에 어른어른 하는 작품이 하나둘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작품들을 쉽게 구입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도록을 보며 아쉬움을 달랠 뿐이죠.

그런 저에게도 올 8월, 저만의 미술작품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들였을 지 궁금하시죠? 놀랍게도 단 1원도 들지 않았습니다. 미술담당 기자라고 지위를 남용해 '뺏은 것' 아니냐고요? 그랬다가는 바로 쇠고랑 찹니다.^^;;

저의 첫 번째 컬렉션은 순전히 저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열렸던 "그리움, 동아시아 현대미술전"에서 말입니다. 동아시아의 뜨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요, 타이완 작가 투웨이 청'보물찾기'라는 작품을 내놓고 관람객들에게 기발한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보물찾기'는 투웨이 청이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 80점을 모은 작품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액자에 끼워 전시하고, 똑같은 사진 복사본 수십 장을 작품 앞에 내놨습니다.

1. 먼저 관람객이 작가의 사진을 봅니다.
2. 사진 80여 점 가운데 하나를 고릅니다.
3. 그렇게 고른 사진의 복사본을 가지고 전시장 밖으로 나가 사진 속 장소를 찾습니다.
4. 장소를 찾았다면, 들고 나간 사진 복사본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5. 인증사진을 가지고 다시 전시장을 찾아 관계자에게 보여줍니다.

이런 미션을 완수하면, 바로 그 투웨이 청의 진짜 사진 작품은 내 것이 됩니다.

저는 이 80장의 사진 가운데, 언젠가 인사동에서 본 듯한 장소의 사진을 골랐습니다. 일단 인사동으로 나가 예상했던 장소로 달려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사진 속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운이 좋게도, 저는 투웨이 청의 작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저처럼 이런 과정을 거쳐 작품을 소유하게 된 운 좋은 사람은 제 앞에도 이미 17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왔다갔다 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서울 시내라지만 워낙 세세한 부분을 찍은 사진이 많아 사진 속 장소를 찾는 일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도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곳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게다가 미션을 수행하면서 '작가가 이 길을 지나 갔겠구나', '이 사진을 왜 찍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작가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작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설사 사진 속 장소를 못 찾는다 하더라도, 내가 마치 미술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 낭비는 아닌 것입니다.

                   
지금 이 작품은 제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제 돈을 주고 데려온 첫 번째 컬렉션도 있습니다. 제일 먼저 가격이 궁금하겠죠? 한 달 교통비도 채 안 되는 금액, 20만 원에 마련한 작품입니다.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 맨(Greeting Man)', 즉 '인사하는 사람' 조각상입니다. 남자가 공손하게 꾸벅 머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의 30cm 정도 되는 작품입니다.

                   

사람을 제일 처음 만나면 하는 일이 바로 인사죠. 유 작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이 몸동작에 주목했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의 이 동작이 곧 평화와 화해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만의 허리를 숙이는 인사법은 나를 낮춰 상대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다른 그 어떤 나라의 인사법보다 더 상대를 존중하는 듯합니다.

현재 서울 구 용산구청사와 공덕동의 한 건물 앞, 경기도미술관과 경기도 해이리에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인사하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가 민망할 정도로 공손한 모습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멈춰서서 마주보고 인사를 하게 됩니다.

                   

유 작가는 현재 '인사하는 사람'을 세계로 보내려는 이른바 '그리팅 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목표 장소는 우루과이입니다. 우루과이 하면, 우루과이 라운드 정도만 떠오를 뿐, 별다른 관계도 없는 나라인데, 왜 하필 우루과이일까요.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나라에서 구멍을 뚫어 끝까지 내려가면 나오는 나라가 바로 우루과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정반대에 있는 나라, 잘 알지 못하는 생소한 나라에 지구 반대편에서 인사를 먼저 보내는 것입니다. 이 인사를 통해 두 나라는 좀 더 친근함을 느낄 수 있게 되겠죠. 우루과이 측도 유 작가의 뜻을 이해하고, 수도 몬테비데오의 한 장소를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프로젝트 수행일은 내년 초쯤, 그때가 되면 6미터의 '인사하는 사람'이 우루과이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의 인사를 대신 보내게 됩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6미터의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고, 그 작품을 우루과이까지 가져가는 데는 수억 원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유 작가는 이 과정에 관람객을 참여시키기로 했습니다. 30cm 작은 '인사하는 사람' 조각상을 1천 개 만들어 관람객에게 판매하고, 여기서 생기는 수익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작은 조각상을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원하는 번호의 에디션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또 그들의 사인이나 메시지도 받아 놓습니다. 이 메시지는 우루과이에 진출하는 '인사하는 사람' 받침대에 새겨지게 됩니다. 결국 미술작품을 사는 것이 곧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한 점 구입하면서, 어머니의 생일 날짜 1월 12일을 뜻하는 112번의 에디션을 선택했습니다. (작품을 구입하면 아래와 같은 케이스에 넣어주는데, 맨 아랫부분에 1000개 중 112번째라는 에디션 넘버를 적어 줍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는 '우루과이에 가보셨다'고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엄마 사랑해'라는 사인도 남겼습니다. 평소에는 민망해서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해드리는데, 언젠가 어머니가 우루과이를 가서 이 메시지를 보시면 기분이 좋으시겠죠.


어떠세요? 이 정도면 나도 미술작품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시죠?

비록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그림은 아니지만요,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나만의 의미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소유한 '진정한' 컬렉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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