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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승길까지 바가지 쓰고 가야되나

[취재파일] 저승길까지 바가지 쓰고 가야되나
검찰은 장례식장과 경찰관 유착비리에 대한 수사결과를 지난 월요일(14일) 발표했다. 지난 달 검찰은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숨진 변사시신을 특정 장례식장에 넘기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다는 장례식장-경찰관 유착비리 수사를 시작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사건과 연루된 경찰관은 11명이고 소방관은 2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의 모 장례식장 대표 이모 씨로부터 변사시신 정보를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관 11명 가운데 7명이 금품을 받은 사실은 밝혀냈으나 나머지 인원은 정보를 넘긴 것만 확인했을 뿐 돈을 받은 부분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지난 4월 경찰의 감찰 등 과정에서 이미 증거가 많이 없어진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식장 대표 이 씨는 전직 경찰관 출신으로 지난 1997년 뇌물 사건에 연루돼 퇴직했다고 한다. 그 후 2003년부터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기존 동료들을 통해 경찰관들을 알게 됐고 인근 지구대나 소방서 회식자리에 참석해 친분을 쌓았다. 변사 시신 거래를 앞둔 사전 정지 작업을 한 셈이다.

이후 이 씨는 휴대전화 15대 정도를 만들어 친분이 있는 경찰관, 소방관에게 나누어 주고 변사 시신이 생기면 연락을 요청했다. 일종의 변사시신 거래 핫라인을 개설한 것이다. 시신 한 구당 금액은 20만 원 정도였다. 이렇게 경찰관과 소방관-장례식장의 공생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검찰은 수사단계에서 이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통화, 문자 메시지 기록은 물론 음성녹음 파일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가 변사시신 정보 입수 대가로 경찰관 7명에게 4백55만 원을 건넸지만 비교적 소액인 점을 감안해 경찰관들을 기소하지 않고 경찰청 등 해당기관에 통보하는 선에 수사를 그쳤다.

시신을 수백, 수천 구를 넘긴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장례는 치러야 할 시신 보내주고 수고비 정도를 받은 것이 그렇게 큰 문제냐고 이들을 강변해 주는 사람도 주변에 있었다. 밤새 근무하면서 매일 변사자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변사 시신의 경우 타살 혐의점이 없으면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문제도 있는데 현장에서 경찰들이 계속 기다릴 수도 없지 않느냐는 말도 들었다.

그럼 이 돈이 어디서 나오게 되는 것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일까. 장례식장 업주가 자선사업가가 아닐진대 개인 돈 털어서 뒷돈을 찔러 주겠는가. 결국 유족의 주머니에게 나오는 돈일 수 밖에 없다.

이 씨는 유족들이 장례업체에 조화나 상복 등을 주문할 때 마다 일정 수준의 리베이트를 받아서 그 돈으로 공무원들을 매수했다. 검찰은 상복 대여비 같은 경우 남성은 6만 원 가운데 3만5천 원, 여성은 2만 원 가운데 1만 원이 리베이트라고 밝혔다. 이렇듯 장례절차 대부분의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존재하다 보니 4백30만 원의 장례비용이 들어간다면 이 가운데 22%인 95만 원이 리베이트라는 것이다.

장례용품 업체는 리베이트로 나가는 액수만큼 물건에 가격을 덧붙일 수 밖에 없고 상을 당한 유족은 제수용품에 대해 ‘싸네, 비싸네’ 하면서 흥정을 하는 것 자체가 우리네 정서에는 불경스러워 보일 수 있어 그저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대로 지불을 하게 되니까 이렇게 적잖은 부담이 유족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갑자기 숨지는 변고를 당해 경황이 없는 유족들을 상대로 바가지까지 씌우고 거기서 나오는 돈을 경찰관 등에게 뇌물로 건네는 이런 잘못된 구조가 이번 수사로 인해 조금이나마 밝혀진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런 일은 단순히 서울의 한 장례식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고 있는 이런 비리의 구조는 하루빨리 근절되어야 한다. 수사로 할 수 있는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당국이 나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은 이들이 저승길까지 바가지를 쓰고 가지 않을 수 있도록 법이나 규정을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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